[서재정] 17년 전 오늘, 가슴 벅찬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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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6-20 21:20 조회38,4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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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8819.html
“눈을 보고 단단히 화를 내며 단단히 상대에게 말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가 11일 지원단체인 나팔꽃의 모임 총회에서 말했다. 북의 ‘일본인 납치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나서 요구를 전하고 상대의 의사를 듣지 않으면 해결의 단초조차 만들 수 없다. 대화는 모든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이다.
대화만 하면 문제가 당장 해결되나? 대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묻는다. 교묘하게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만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화만 해서는 어느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화하지 않으면 어느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대화는 필요조건이되 충분조건은 아니다.
남북 대화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필요조건이고, 북-미 대화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필요조건이다. 한-미 대화는 이 필요조건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북 외무성의 최선희 미국국장은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하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이 적절하면” 김정은 국방위원장과도 만나겠다고 했다. ‘여건’과 ‘상황’을 조화시킬 절호의 기회가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것이다. 한-미 대화와 남북 대화로 이 조화를 만들어내면 된다. 그것으로 북-미 대화를 촉진하고, 4자회담 및 6자회담으로 대화를 상생적으로 확산시킬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당장은 “대화로 포장된 길이 자칫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 개연성”(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이 더 크다. 서로 대화를 말하면서도 손은 서로 상대의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손에 서로 최대의 힘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최대의 압박’과 ‘핵 보검’은 대화해야 할 상대의 목을 최대로 짓누르고 있다.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이달 말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단단히 말하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과의 대화가 필요조건이라고. 그 필요조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책의 목적이 평화임을 천명하고 북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고. 설득하여 정상회담 성명에 다음과 같은 표현을 집어넣어라.
“한-미 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며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에 비추어 한-미 양국은 적대적 행위를 보이는 국가와 집단이 아니라면 그 어느 국가와 집단에 대해서도 적대적 의사가 없다.”
그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이러한 선언은 대화로 가는 첫 디딤돌이다. 한-미 당국이 북에 대한 적대적 조치들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겠다며 북에도 적대적 조치의 잠정보류를 촉구하면 두번째 디딤돌까지 가는 것이다. 동시 잠정보류가 이뤄진다면 남북과 북-미가 만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만나서 ‘쌍중단’을 얘기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얘기할 최고 수준의 만남을 얘기하면 된다.
중국의 제안인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은 사실 오래된 ‘새로운 제안’이다. 쌍중단도 어렵다면 동시 잠정보류로 시작하자. 잠정보류→쌍중단→쌍궤병행의 길이다. 그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공간은 한-미 정상회담이 만들어줘야 한다. (후략)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17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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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8819.html#csidx440d973b0772e878e769c3af7669b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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