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신재생에너지를 요구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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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7-07 11:37 조회38,4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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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신재생에너지를 요구할 권리
에너지 생산 방식과 상관없이 그것을 쓸 수만 있으면 에너지 접근권이 보장된다고 하던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만들어진 에너지인가 하는 점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인권침해의 주범이라는 점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드문 사례다.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우리가 느꼈던 통렬한 불의감과 도덕적 공분을 기후변화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을 때에 우리의 인권의식은 진정한 도약을 맞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이 몇 종류나 될까. 십 년 전 <인권의 문법>을 집필할 때 세어 보니 예순 개 정도였다. 작년에 <인권의 지평>을 내면서 다시 찾아보니 그새 일흔 개 가까이 되었다. ‘권’ 자를 붙인다고 모두 공식 인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새로운 권리 주장은 인권을 확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알 권리나 잊혀질 권리처럼 꼭 필요하다 싶은 권리도 있고, 불쾌해질 권리(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인정하자는 입장)처럼 쓴웃음이 나오는 주장도 있다. 요즘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새 권리는 ‘신재생에너지를 요구할 권리’다.
오랫동안 개발론을 지배해 온 사상은 경제개발이었다.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면 발전이 된다고 보는 단선적 견해였다. 유엔 초기부터 국민계정체계에 따라 각국을 경제발전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거시경제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개발도상국도 언젠가는 선진국이 될 것으로 가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선발국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짜 놓은 불평등한 국제경제 체제 내에서 개도국들이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개도국 민중의 실제 욕구를 반영하지 못한 개발 정책도 문제였다. 인프라 확충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보통사람들이 에너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본 욕구조차 충족되지 못했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 중 3분의 1이 전기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 탈피는 불가능에 가깝다. 에너지 접근성이 발전권의 핵심으로 부각된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생산 방식과 상관없이 그것을 쓸 수만 있으면 에너지 접근권이 보장된다고 하던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만들어진 에너지인가 하는 점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때문이다. 나는 기후변화가 절체절명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한겨레> 지면에서 역설한 적이 있다(2015년 8월19일치). 공교롭게도 그해 말 파리기후협정 회의 직전 국제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이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인권과 환경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단체인 앰네스티와 그린피스가 <기후변화 시대의 인권보호를 위해 100% 신재생에너지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두 단체는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반세기 내에 지금의 전세계 빈곤층에 더해 6억 명 이상이 추가로 기근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이 높지만 설령 기온 상승이 2도 내에 머물더라도 인류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 한다. 특히 빈곤층, 여성과 소녀, 원주민, 만성적 차별을 당해 온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 집단이 된다. 폭염과 신종 질병으로 연간 25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말라리아, 콜레라, 지카바이러스, 뎅기열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열대의학으로 치부되던 곤충매개 감염병을 보건학에서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두 단체의 공동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인권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신재생에너지를 부각시킨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통찰력 있는 삼단논법이다. ①기후변화는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다. ②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이므로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③그러므로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할수록 인권이 좋아질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의 사용 자체가 인권임을 논증한 그린피스와 앰네스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한 주장을 편다. 2050년까지 화석연료를 전면 퇴출하고 100% 신재생에너지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이런 결단을 세기말로 늦추면 이미 때가 늦다고 한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이 흔히 그렇듯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이다. 난마처럼 얽힌 문제일수록 핵심을 직시하는 자세가 정답이다.
물론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단기적으론 만병통치약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화석연료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또한 빈곤층의 생계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에 따라 젠더 불평등이 일시 악화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과 변동성 때문에 상당 기간 보통사람들의 에너지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설비 때문에 지역사회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의 실천적 해법으로서 신재생에너지를 부각시킨 점, 그리고 환경운동과 인권운동 간의 건설적 협력관계의 고리를 만든 점은 우리가 곱씹을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근래 들어 신재생에너지의 생산 단가가 대폭 떨어진 건 희망적인 소식이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16년은 “태양광과 풍력을 통한 에너지 생산비가 화석연료 및 천연가스의 생산비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진 최초의 해”였다. 신재생에너지의 가성비가 높아진 주된 이유는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2014년 전세계에서 화석연료 생산에 제공된 보조금 총액이 신재생에너지 보조금보다 무려 네 배나 많았다. 십 년 전만 해도 천연가스에 비해 태양광 발전 비용이 여섯 배 이상 비쌌지만 현재는 비슷한 수준이 되었고 풍력은 태양광의 절반 정도 비용으로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후변화를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도 접근할 때 어떤 점이 달라지는가. 우선, 인권의 긴박함과 절대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환경과 생태 이슈를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그것을 다소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반면 자신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인권 이슈에는 더 강력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인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구 행성의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권리의 주체인 시민들이 의무의 주체인 국가에 대해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고, 시민사회는 국가가 그것에 상응하는 대책을 분명히 실천하는지를 따져 정치적 책임성을 물을 수 있게 된다.
파리기후협정에서도 기후변화가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각국이 그렇게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협정의 전문을 보라. “당사국들은 인권, 건강권, 원주민, 지역사회, 이주민, 어린이, 장애인, 모든 약자 집단의 권리, 발전권, 젠더 평등, 여성의 자력화와 세대 간 형평성에 관한 의무를 준수하고 증진하고 고려한다.”
오랫동안 인권을 가르쳐 왔지만 참으로 쉽지 않다고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뿌리원인에 대해 학생들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직접적인 가해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조리, 누가 봐도 잘못된 악행에 대해서는 인권의 문제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며, 모두가 속해 있는 시스템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인권침해의 주범으로 인식하기 위해선 많은 공부와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인권침해의 주범이라는 점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드문 사례다.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우리가 느꼈던 통렬한 불의감과 도덕적 공분을 기후변화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을 때에 우리의 인권의식은 진정한 도약을 맞을 것이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7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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