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세계체제와 호흡하는 국정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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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7-21 11:30 조회38,8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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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작업을 마무리했다. 여기에는 국정비전과 목표,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 4대 복합혁신 과제 등이 들어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청사진이 되게 하려면, 국정과제의 방향을 관통하는 지향성을 만들어야 한다. 과제들의 연계성과 총체성이 응축된 국가비전으로 계속 다듬어가야 한다.
선거과정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계획의 세세한 사항은 시행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조정을 해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핵심과제는 정부 운영의 주춧돌과 나침반 역할을 맡아주어야 하므로 쉽게 흔들려서는 안된다.
핵심 과제들이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마련되고 서로 단단히 연결된 의미망을 가지고 있어야 구체적인 정책 사안들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국정기획위는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할 4대 과제로 일자리, 저출산, 4차 산업혁명, 균형발전을 제시했다. 이 4대 과제가 중대한 문제라는 것은 공감할 만하다. 다만 이들 문제가 어떤 뿌리를 지니고 있고,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좀 더 면밀하게 토론해가야 한다. 4대 과제의 뿌리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형성된 성장체제와 지정학적 경쟁·협조 체제가 닿아 있음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정과제 중 첫머리로 내세워진 일자리는 크게 두 차원의 문제가 얽혀 있다. 하나는 전반적인 성장 둔화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산업과 노동체제의 성격 변화 문제다. 저출산 추세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전개된 인구변화 주기의 마지막 단계의 현상이다. 이는 투자와 소비의 위축을 가져와서 저성장 압력을 증폭한다.
4차 산업혁명은 산업·기술 등 생산방식과 함께 일자리의 성격 자체를 개편하는 경제·사회적 전환이다. 지역 간 불균형발전은 그간 성장체제의 공간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전환은 세계적 차원의 완만한 공황, 새로운 산업혁명과 지정학적 변동이 결합된 뉴노멀 현상이다. 기존 분과학문이나 부처단위의 접근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일자리 문제는 기존의 미시·거시 경제학 시야를 넘어서는 문제다.
케인스주의와 포디즘이 결합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내던 방식은 2차대전 이후 양 진영으로 갈라진 세계체제 속에서 작동되던 것이다.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및 정보화·인공지능 기술의 진전은 산업과 일자리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별도로 출범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다루는 문제는 세계적 차원의 자본축적 과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두 위원회와 관련 부처들의 정책기획 및 실행 방향이 엇나가지 않게 조율하는 청와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균형발전 문제도 단순히 국내 자원의 지역 간 분배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의 지역 격차는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생산공정의 분할과 지리적 재배치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다. 권력과 재정을 분권화하는 것만으로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와 한반도 경제지도를 재구성하는 구상을 균형발전 정책과 연결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운영해본 경험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좋다. 과거 경험을 이어가되 국내·국외·남북한 문제를 별도의 것으로 구분하려는 관성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간 격차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편중성과 집중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미·중의 산업·고용 구조와 지정학적 경쟁이 동아시아 분업관계의 변경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 남북한 간 네트워크의 격차가 북한의 핵무장화와 ‘두 개의 조선’ 전략을 강화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할 때, 세계체제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현실의 개혁과제가 국내적·부분적 정책수단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 실질적인 개혁은 세계체제의 혁신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 각 체제, 분단체제, 세계체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세계체제의 규정력이 가장 기본적이다. (후략)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신문, 2017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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