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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21세기 그리스도교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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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10-26 09:23 조회38,8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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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5845.html#csidx9bea61d546cc67eb444f29e11d8901c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이마고 데이’ 즉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천부적인 존엄을 지니며 그것이 인권의 토대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권을 침해하면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톨릭은 세속 인권담론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도 가톨릭적 특징을 유지한 인권사상을 발전시켰다.

나는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차원의 인권 발전과 어깨동무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예수의 행적과 그 신앙의 특성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서 비켜나 있을 수 없다.” 복음주의 신학자 볼프강 후버의 말이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21세기에 새겨야 할 지향이 아닐까 한다.

다음 주면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년을 맞는다. 인권 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통틀어 그리스도교의 인권관도 근본적 차원에서 변했다. 큰 틀에서 보면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교와 인권은 점진적으로 수렴되어 왔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는 시대적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교회에 뿌리를 둔 인권단체들,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구현사제단, 정의평화위원회 같은 조직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그리스도교가 전세계적으로 인권의 길로 나아가게 된 과정을 짚어보려 한다. 이 역사를 이해하면 21세기 한국 그리스도교가 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것이다.

개신교는 누구도 진리를 독점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내적 신념과 외적 표현을 억압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성직자의 중재 없이 직접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 그리고 평신도가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한 것은 자유와 자율을 지닌 근대적 개인이 출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종교자유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권리가 필요했고 이는 근대 인권의 방향과 맞아떨어졌다.


루터와 칼뱅의 신학관에 힘입어 교회의 권력과 재산은 국가로 이동했고 그것을 통해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방식이 변했다. 교회법원과 국가법원이 통합되었고, 형법 절차가 개선되었으며, 가족법과 사회복지 관련법이 크게 변화했다. 이런 경향은 입헌주의 그리고 연방주의와도 연결되었다. 미국의 경우, 연방헌법 수정조항 1조에서부터 정교분리를 규정한 덕분에 종교자유가 개인권리로 이어지는 정치문화가 조성되었다.


개신교가 종교적 불관용의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루터의 반유대주의, 크롬웰의 청교도 독재, 칼뱅의 신정주의는 잘 알려진 사례다. 노예제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식민지배와 정복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과 착취는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회중교회, 루터교, 구세군 등 주요 교단들은 인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유엔 결성과 세계인권선언 제정에도 힘을 보탰다. 빈곤과 정치적 탄압에 맞서고 있던 한국 등 개도국의 민중과 연대하고 그들의 투쟁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미국 정부의 제3세계 군사독재정권 지원을 반대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인권유린 상황을 조사하고 난민을 구호하는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초교파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활약도 언급해야 하겠다. 이 조직에 깊이 관여했던 프레더릭 놀디 교수는 국제 문제에 관한 교회위원회(CCIA)의 총무를 겸임하면서 세계인권선언 18조에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포함시키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협의회는 1998년 제8차 세계총회에서 ‘인권에 관한 공식성명’을 발표하여 지구화의 문제점, 인권의 불가분성과 보편성, 인권 정치화 반대, 인권 침해자의 불처벌 반대, 사형 폐지, 평화 구축, 종교자유와 종교적 관용, 여성·원주민·난민·장애인 인권, 모든 종류의 차별 반대를 선언했다.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단의 분위기는 달랐다. 냉전 시기에 공산권의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성과를 내긴 했으나 우파 독재에는 눈감은 경우가 많았다. 남아프리카의 흑백분리 정책을 반공의 이름으로 용인했던 게 좋은 예다. 유엔의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정당화하곤 했다.


종교개혁 이후 나타난 반종교개혁의 움직임 속에서 가톨릭의 2세대 스콜라 철학자들은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권한을 통한 새로운 인권이론을 발전시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 인권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라스 카사스 신부도 이런 흐름에 속한다. 그러나 가톨릭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과학의 진보와 갈등을 빚고 개인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잦았다. 프랑스혁명에서 교회는 보수반동의 편에 섰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새천년을 맞아 교회가 인권을 유린한 경우가 많았음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역사적 고백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이마고 데이’ 즉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천부적인 존엄을 지니며 그것이 인권의 토대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권을 침해하면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톨릭은 그 사회교리 체계를 통해 세속 인권담론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도 가톨릭적 특징을 확실히 유지한 인권사상을 발전시켰다. 이에 따르면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이고, 모든 권리는 인간의 가치를 법적·제도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되어야 하며, 인권을 실현하려면 사회적 연대와 국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태아 보호, 안락사 반대, 사형 폐지 등 생명의 가치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가톨릭의 현대 인권 프레임은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의 노동회칙 ‘자본 및 노동의 권리와 의무’에서 비롯되었고, 이 회칙은 유럽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토대가 되었다. 비오 12세 교황은 이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성탄 메시지를 통해 평화 5개항을 발표했는데 그중 첫째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세계인권선언 제정 과정에 참여했고 유엔을 통한 국제 인권외교의 선두에 서왔다. 가톨릭 학생과 지식인 운동의 연합체인 팍스로마나의 역할도 기록해 둘 만하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3년 ‘지상의 평화’ 회칙을 발표하여 유엔에서 만든 가장 중요한 문헌이 세계인권선언이라고 인정하면서 이 선언이 “세계 공동체의 법적, 정치적 조직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를 의미”하고 “모든 인간에게 더욱 장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한다고 평가했다. 바티칸공의회에서 나온 종교자유 선언인 ‘인간 존엄성’, 그리고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인 ‘기쁨과 희망’도 가톨릭의 핵심 인권문헌으로 꼽힌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인권의 확실한 우군이 되어 있다.


그러나 흠결이 없는 건 아니다. 가톨릭 교세가 강한 여러 지역에서 독재정권을 묵인하기도 했고, 여성의 권리 신장에 소극적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교회기관의 직원들을 야박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종교개혁 이래 그리스도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인류의 존엄을 지키는 역할을 확대해 왔고 국제인권체제의 발전에도 큰 몫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제인권규약’의 ‘규약’(Covenant)이라는 용어가 창세기 21장의 “아브라함이 소와 양을 끌어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은 ‘언약’을 맺었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인권이 긴장관계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인권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성과 계시를 통해 인권을 식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인권을 성서적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절대화하면 신의 주권이 훼손되는지, 하는 신학적 질문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신도가 많다.


인권을 둘러싼 한국 개신교의 최근 논란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종교인의 관점으로 세상사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 종교자유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을 일반사회에 설파할 때엔 종교인다운 온유와 덕성에 바탕을 두고 처신하는 절제심이 필요하다. ‘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앙과 공적 이성이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권문제는 흑백으로 가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차이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더라도 현실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절충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7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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