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근조, 한반도 평화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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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11-11 16:54 조회39,3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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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8120.html#csidx8c0cce97d42f7f3b64eb4e88ae4764c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언했다. “이제는 힘의 시대다.” 이삼성 교수가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했다면, 이제 바야흐로 ‘폭력의 시대’가 열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기립박수와 함께. 그 박수 소리는 한반도 평화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 소리다. 삼가 애도를 표한다.
그간 전략자산이라는 군사력을 북의 코앞에서 시위하던 미국은 본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는 껍데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일본 및 한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최대의 압박’을 전면에 내세웠다. ‘관여’는 시나브로 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나 동맹국이 협박받거나 공격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도시들이 파괴의 위협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매우 위험하다. 북의 억제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억제는 그 본질상 힘에 의한 위협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억제가 기본전략이다. 우리를 공격하면 핵무기를 포함한 힘으로 보복하겠다는 위협이 억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북도 억제전략을 배웠다. 핵미사일을 포함한 힘으로 보복하겠다는 위협으로 안전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병진노선’이라는 국가의 최고전략으로 채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공격을 허용치 않겠다는 것을 넘어서 위협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북의 억제전략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힘으로 북의 병진노선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로 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희망이다. 하지만 수단은 거친 힘이다. 그 평화를 힘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갈수록 커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압도적 힘과 우위를 토대로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한국 혼자 힘으로는 ‘압도적 힘과 우위’를 확보할 수 없으니 트럼프 대통령을 환대하고 무기를 사주면서라도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라도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평화를 힘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 강한 힘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 순간, 선택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가장 센 놈과 ‘맞짱’을 뜨거나 가장 센 놈 가랑이 밑을 기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이 두 가지 전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타나는 모습은 영 딴판이지만 그 본질은 같다. 남과 북은 쌍생아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종교가 그 모태다. 트럼프는 그 종교의 대사제다.
북은 9월 핵과 미사일 시험을 단행한 이후 군사행동을 두 달 가까이 자제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해석할 것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했고, 그 전에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똑같은 표현을 썼다.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하겠다고.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확답을 주었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 49차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연합훈련을 지속 실시”할 뿐만 아니라 “억제태세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북의 요구를 명백히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야기는 지금 얘기할 게 아니”라고 합세했다. (후략)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17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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