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 '더 좋은 숨'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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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1-09 14:03 조회39,4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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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뿌리를 박은 식물은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자세를 정돈할까. 그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까. 식물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위치를 찾는다. 식물은 사방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의 합을 통해 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고 어떤 자세로 자라야 하는지 파악한다.
안미옥의 첫 시집 <온>을 빌려 식물들의 방식을 전하자면 다음의 시적 상황을 꺼내도 될 것 같다. 모두가 숲을 이루는 투명한 잎에 집중할 때 “풀숲 안으로”, 가장 안쪽인 “마지막 장소”까지 들어가 “식물의 끝에” “하얗고 부드러운 뿌리”를 보자고(<식물표본집>).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거기엔 이미 자신의 태도와 방향을 찾기 위해 애쓰는 발끝과, “갇혀 있”는 현재를 일으켜 다음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중”인 의지와(<호칭>), “몸을 비”트는 “벽”에서 열리는 “시작”(<천국 2>)이 있다고. 안미옥은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 사방에서 가해지는 힘을 어떻게 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신하는지, 하여 이들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호흡의 방법은 어떻게 다듬어지고 이어지는지를 치열하게 그리는 시인이다.
“나는 평평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몸을 열면/ 더 좋은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을 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공중에 떠 있는 새의 호흡이나/ 물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호흡을 상상해// 숨이 턱 밑으로/ 겨우겨우 내려가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두 눈은 붉은 열매 같고// 행진을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다// 숨을 편하게 쉬어봐/ 좀 더 몸을 열어봐// 나는 무언가 알게 된 사람처럼/ 유리문을 연다.”(<문턱에서> 중에서)
어디 멀리로 달아날 수 없어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의 상황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시집 속 다른 화자들처럼, 위의 시에서 화자는 “더 좋은 숨”을 쉬기 위해 몸을 열고자 한다. “숨이 턱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는 훼방의 조건들이 주위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들숨 날숨을 오가야 단 한 번의 호흡을 완성하듯, 단 한 번의 호흡을 이어가야 몸속의 피가 돌 듯, 시인은 지금 행한 일을 정성스레 반복한다. 했던 말을 몇 번 더 한다. 말의 가장 내밀한 구석까지 들어가 기어이 무게중심을 찾는다. (후략)
양경언 문학평론가
(시사인, 2018년 01월 04일)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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