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비판적 지지와 집토끼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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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2-24 16:16 조회33,7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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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시민들의 피로감과 분노 수위를 높이는 것은 단지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들만은 아니다. 일전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퇴를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새로이 떠오르는 대선주자들 역시 구설에 올랐다 곤욕을 치렀다 해명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정치에서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세력의 큰 반대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여러 후보가 자신의 지지층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기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연정 논의에 보태서 박 대통령의 ‘선의’까지 주장하다가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는 안희정 지사도 그중 한 사람이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직후에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에’ 두겠다고 했다, 안 했다 논란에 싸인 문재인 전 대표도 해당한다.
문 전 대표의 경우, 명시적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이 나중이라 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 직전에 보수 기독교계와의 만남에서 이미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차별은 곤란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차별금지법 제정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미 여성계에서 낙태죄는 그 존재 자체로 여성 혐오적인 법률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낙태죄 폐지 입장조차 취할 생각이 없고, 또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페미니즘의 핵심적 내용에조차 동의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선언하며 진보적 여성운동의 지지를 바라는 형국인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되어 온 것으로서 이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이 법이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 우기는 보수세력에 동조하여 사회적 합의가 없어 추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이해관계의 충돌을 뚫고 개혁을 추진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선언한 것에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소위 ‘집토끼’는 이미 잡았다 치고 산에 있는 남의 토끼를 잡아야 선거에서 이긴다면서, 개혁 대상이거나 사회적 적폐의 장본인들, 최대한 양보해서 설득 대상이 되어야 할 상대의 눈치만 보는 행태가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올해는 필자가 투표권도 없이 열심히 호헌철폐부터 공정선거감시운동까지 뛰어 다녔던 87년으로부터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여건상 원하는 정책은 얻을 수 없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어려우며, 우선은 비판적 지지를 하라는 이야기 역시 30년을 꼬박 들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올해도 그래야 하는 것일까.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한국일보, 2017년 2월 23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fdba4cff13594692b533473c5385c1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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