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 ‘정구지’라는 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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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11-01 09:50 조회38,7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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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6243.html#csidxf261567b5741ace9c40ad0228eec94c
장철문, ‘임종’
<21세기 문학> 2017년 가을호
장철문 시인의 시 ‘임종’에는 할머니와 오줌동이를 이고 밭으로 나가 거름을 뿌리면서, 와중에 작대기에 꿰어 든 오줌동이에서 나는 냄새에 코를 싸쥔 채 실없는 말을 던지다가 할머니로부터 “별 옴 따까리 지는 소리 다 한다고” 핀잔을 들으면서, 할머니로부터 ‘정구지’라는 말의 실감을 배웠던 시인의 얘기가 나온다. ‘정구지’가 ‘부추’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에게도 시인이 부추꽃의 생김새를 분별할 수 있게 된 배경인 앞서의 일화를 들려준다면 어떤 경우의 ‘부추’는 꼭 ‘부추’가 아니어도 된다고 여길 수 있겠다. 어쩌면 ‘정구지’라는 말이야말로 시인이 그리는 ‘부추’의 정서를 더 잘 담아낸다고 생각할지도. 시인에게 ‘정구지’라는 말은 할머니와의 친밀한 관계에 기반을 둔 자신의 경험으로 학습된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익힐 때 우리는 그 말이 지시하는 바만을 알고 말지 않는다. 그 말을 받아들일 때 동원할 수 있는 나의 감각, 그 말을 주고받을 때 자연스럽게 마련되는 정서, 그 말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와 더불어 익힌다. 그러니 말을 익히는 과정이란 몸에 말이 새겨지는 일과 같다. 그런데 한편, 시인이 부추꽃 앞에서 ‘정구지꽃’이란 말을 떠올리고, 그 말을 자신의 몸에 새긴 할머니와의 시간을 떠올릴 때 시인의 가족이 보인 반응이 흥미롭다. ‘임종’은 ‘부추’란 말을 각기 다르게 겪은 이들의 저마다의 응답으로 시작하는 시다.
“부추꽃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렸다// 정구지꽃, 이라고 쓰려다가/ 부추꽃이라 했는데,/ 아내는 우리가 먹는 그 부추?/ 하고/ 아이는/ 졸려ㅠㅠ 했다.//…(중략)…// 나는 정구지꽃을 알고/ 그것이 부추꽃인 것을 알고/ 아내는 부추를 알고/ 부추김치를 담글 줄 알고/ 아이는 졸음을 알고/ 부추김치에 밥을 비벼먹을 줄 알고// 나는 부추가 정구지의 표준어이고/ 어느 지방에서는 솔이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소쉬르의 언어 기호의 자의성을 설명하기 좋은 예라는 것을 알고/…(중략)…/ 할머니는 기표도 기의도 기호도 대상도 모르셨고/ 부추도 솔도 모르셨고,/ 정구지의 사계절을 아셨다/ 그 순과 뿌리와/ 흰 꽃과 햇살과 오줌과 고랫재를 아셨다//…(중략)…// 오늘 나는 왜/ 남의 밭둑에 쪼그려 앉아/ 콧물에 눈물을 섞어서 정구지 밭을 적시는 것일까?/ 당신은 어느 밭둑을 타고 앉아 옛 손자의 늦은 임종을 받는 것일까?”(장철문, ‘임종’ 부분)
이탈리아의 미디어 활동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가 말했듯 언어에 대한 학습이 친밀한 관계가 제공하는 신체적인 애착 경험과 점차 분리되어가는 대신에 기계를 통해 자주 이뤄지고 있는 요즘이다. 검색 사이트가 수다하므로 우리는 ‘정구지’라는 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어쩌면 우리는 ‘정구지’라는 말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말을 ‘안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후략)
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7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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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6243.html#csidxf261567b5741ace9c40ad0228eec9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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