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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올림픽, 스포츠,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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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7 17:13 조회33,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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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있어 무엇이 선진적이고 21세기적인 태도인가. 인권의 시선으로 스포츠를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스포츠 인권은 인권 분야의 새로운 의제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단언컨대 앞으로 스포츠 인권에 관한 연구와 정책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올림픽헌장은 스포츠가 “우애와 연대와 페어플레이 정신에 기반한 상호이해”를 돕는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익힌 사회에서 감히 민중 개돼지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사회체육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부패한 검사들이 국정을 농단할 수 있을 것인가.


서울 만리동의 옛 양정고보 자리에 손기정 기념관이 있다. 내부를 둘러보노라면 전시물 한 점이 유독 눈길을 끈다. 손기정이 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고 이틀 뒤 한국의 지인에게 보낸 엽서다. 더 이상 간단할 수 없을 만큼 짧은 문안이 가슴을 친다. “슬푸다!!?” 세 글자와 세 부호로 이루어진 이 전언은 식민지 주민의 복잡한 감정이 응축된 우리 민족의 모스 신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나라 잃은 슬픔이라고 풀이한다. 인권 개념으로 본다면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울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은 베를린 올림픽 80주년이자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8월 한 달 내내 세계인의 이목이 브라질에 쏠릴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열광하면서 스스로는 구경꾼의 위치에 자족하고, 언론이 전해주는 메달 집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구태의연한 습관을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이런 식의 피동형 스포츠 관람은 한 세대 전에나 통하던, 그 당시에도 이미 비판의 소리가 높던, 문제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포츠에 있어 무엇이 선진적이고 21세기적인 태도인가. 인권의 시선으로 스포츠를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스포츠 인권은 인권 분야의 새로운 의제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스포츠의 지구화와 글로벌 매스컴 혁명이 맞물리면서 스포츠는 이제 인류의 의식을 하나로 묶고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는 인지적 초점이 되었다. 정치판 돌아가는 것에는 신물을 내면서도 운동경기 판세에는 귀를 기울이는 게 보통 사람들의 감성이 아닌가. 그만큼 스포츠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회변화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다. 엘리트 스포츠건 풀뿌리 차원의 체육이건 마찬가지다. 단언컨대 앞으로 스포츠 인권에 관한 연구와 정책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10년 뒤를 생각하는 대학원생이라면 지금 당장 스포츠 인권 논문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스포츠 인권이 정확히 무엇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놓고 전문가, 교육자,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스포츠 평화포럼’이라는 모임이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 인권을 어쩌면 이렇게 깊이 논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지한 공부 자리다. 이곳에 한번 참석하여 스포츠 인권에 대해 귀동냥을 할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통찰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스포츠 인권을 세 가지 범주-서로 연결되지만 구분되는-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스포츠 활동에서 인권을 보장한다.” 아마 제일 많이 알려진 부분일 것이다. 운동선수들을 상 따오는 머슴처럼 취급하고, 그들의 인격과 인권을 다반사로 짓밟으며, 경기력 향상과 국위선양의 미명하에 그런 행태를 버젓이 자행·방조·묵인하는 국가, 체육단체, 스포츠지도자, 기업들을 보라. 메달지상주의, 경쟁지상주의, 체육상업주의가 스포츠를 뿌리에서부터 왜곡해 놓은 결과다. 이런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그러나 현 정부가 내놓은 정상화 추진 과제 중 스포츠 부문을 보면 고작 ‘체육단체의 불공정·불투명성 개선’이니 ‘연예인·스포츠 선수의 병역 면탈행위 근절’이니 하는 피상적 사안들만 나열되어 있다. 권력의 인권의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게다가 주요 스포츠 행사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도 있다. 특히 초대형 체육행사(메가 스포팅 이벤트, MSE)로 인해 국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거대 행사의 선정, 유치, 건설, 입찰, 주관, 진행 등 전 과정이 문제가 되었다. 경기장 건설 노동자의 착취로부터 비판세력과 약자집단의 탄압·제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한다. 초대형 체육행사의 인권 실적을 수우미양가로 나눠 보면 학생 시위대 수백명이 학살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이나 군부의 ‘더러운 전쟁’을 도와준 꼴이 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가’에 속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예적인 착취 상황 때문에 벌써부터 ‘피의 월드컵’을 우려하는 말이 나온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수’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인간, 자연,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독립적인 인권감시기구의 외부평가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모든 공사의 발주·공급·하청 사슬에 사회적 책임성 개념을 적용한 덕에 건설 과정에서 단 한 건의 산재 사망도 발생하지 않은 사상 첫 올림픽 대회가 되었다. 문제는 런던의 성공 사례가 한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주요 스포츠 행사에서의 인권 존중을 위한 권고문을 발표하여 조직단체, 주최국가, 수주기업이 모두 인권침해 리스크 감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스포츠 자체가 인권이다.” 올림픽헌장은 몸과 의지와 마음을 균형 잡힌 전일성 속에서 고양하고 합일시키려는 삶의 철학이 올림픽이념(올림피즘)이라고 정의한다. 나아가 스포츠와 문화와 교육을 배합하여 “노력에 따른 기쁨, 모범사례가 주는 교육적 가치, 사회적 책임성, 그리고 보편적 기본윤리 원칙의 존중에 기반을 둔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올림피즘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인권의 목적인 ‘인간의 활짝 꽃피움’을 위해서는 체육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올림픽헌장은 기본원칙 4항에서 “스포츠 활동이 곧 인권”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스포츠가 인권이라는 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대한체육회는 스포츠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해야 마땅하다. 또한 입시를 핑계로 체육시간을 없애는 그릇된 교육관을 가진 학교와 교장은 학생 인권유린이라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셋째, “스포츠를 통해 인권을 증진한다.” 지난달 제네바의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스포츠 인권과 관련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인권이사회의 의장 최경림 대사가 주관한 이 모임은 스포츠와 올림픽의 정신을 활용하여 장애인, 여성,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고, 인권에 대한 보편적 존중을 증진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실제로 인권이사회는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 인권 관련 결의안을 5번이나 채택할 정도로 스포츠를 통한 인권 증진에 관심이 많다. 스포츠가 국가들과 국민들 사이의 관용과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인 것이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한겨레, 2016년 7월 26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39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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