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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트럼프 시대의 인권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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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20 17:19 조회33,5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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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현상의 원인을 제공한 분배 불평등에 대해 인권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사회권이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서 상당히 무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는 그 자체가 심대한 인권유린임을 선언해야 한다. 가칭 ‘불의한 불평등 철폐에 관한 국제 인권협약’과 같은 담대한 조처가 필요하다.


경제적 이슈에만 인권운동의 초점을 고정시켜서도 안 된다. 중산층 백인들도 트럼프를 많이 찍었음을 기억하면 그 이유가 나온다. 모든 종류의 낙인찍기와 증오를 배격하고, ‘약자 공격과 증오 선동에 대한 무관용’을 인권의 중핵 과제로 끌어올려야 한다.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악의적으로 자유의 기반을 허무는 자들까지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해줘선 안 된다.


저명한 법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의 <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인권학에서 고전에 속하는 저서다. 한국에는 <법과 권리>로 소개되어 있다. 드워킨은 법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개인의 평등한 권리가 곧 법의 지도원칙이므로 그 어떤 사회적 목표로도 권리를 억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설령 공중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인간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개인의 권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치적 으뜸패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포커게임에서 으뜸패(트럼프)가 다른 모든 패들을 꺾듯이, 사회에서도 권리가 다른 모든 이익을 이긴다는 뜻이다. 인권이 정치 공동체의 트럼프인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트럼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되어 인권과 거리가 먼 정책을 펼치려 하고 있다. 역설이 따로 없다.


며칠 전 트럼프 당선자는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수인들이 극히 위험한 존재라는 트위터를 날렸다. 트럼프식 ‘탈진실’의 전형적인 예다. 알다시피 관타나모 기지의 수인 중 720명이 이미 무혐의로 풀려나 제3국으로 이주했고 현재 59명만이 잔류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23명은 국방부와 국토안전부의 결정에 따라 석방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9·11사태와 직접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오직 5명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실을 완전히 호도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권 전망은 암울하다 못해 시계 제로에 가깝다. 고문에 대한 입장을 보라. 오바마 정부에서 금지되었던 강화심문 기법(물고문의 완곡어법)이 부활할 것 같다. “국민이 강하게 원한다면 물고문 아니라 더 심한 짓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요즘 미국 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선거 공약대로라면 수백만명을 색출하여 수용소에 가두거나 강제송환시킬 것이다.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 미국의 맥락에서 이런 정책은 나치의 유대인 강제추방에 비견될 정도로 끔찍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주자 집단만이 아니라 무슬림, 히스패닉, 여성, 장애인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경향도 트럼프의 인식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내집단과 외집단을 철저히 구분하면서 노골적이고 경멸적으로 ‘타자 만들기’(othering)를 하여 ‘우리’의 일체감을 높인다. 약자, 소수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미국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의 최고 지도자가 이런 일들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해묵은 배타주의가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승인을 받은 셈이 되었다. 과거에는 차별을 하더라도 대다수가 인권 규범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하던 ‘샤이 차별자’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규범의 규제를 풀어주는 판이니 이젠 거리낄 게 아예 없어졌다. 앞으론 ‘민낯 차별자’들이 활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권운동의 전선이 한층 명확해졌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인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에게 인권은 백인 국가의 주권을 강탈하려는 세계주의자들의 음모 또는 노름에 불과하다. 유엔과 같은 다자간 국제기구를 싫어하는 트럼프 추종자들은 인권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어떠한 요구도 수용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타국을 공격하거나 협상의 수단으로 인권을 동원할 수 있다면 그런 인권은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이들은 양식 있는 시민들이 자기들을 무지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수치스러운 존재로 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바깥으로 비치는 이미지가 어떻든 권력을 잡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믿을 만큼 교활하고 영리하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인권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상당히 복잡한 논리와 어려운 실천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악하게 이해한다. 인권이 때론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구석 역시 이들에겐 행복한 먹잇감이다. 따라서 이들은 포퓰리즘적인 선동으로 인권을 즐겁게 조롱하고 힐난한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민 전체의 체감 인권이 당장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타자로 낙인찍힌 약자 집단에 트럼프 대통령은 악몽 중 악몽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미국은 여전히 자유가 보장되는 활기찬 나라, 혹은 좀 과도한 면이 있긴 해도 여전히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괜찮은 나라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현실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극단의 전체주의도 고도의 파시즘도 아닌, 그러나 구성원들 일부를 심하게 배제한 채 나머지들끼리만 일상성과 정상성의 외양을 유지하는 반(反)포용적, 반(半)자유주의적 유사 민주국가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사람들의 인권은 트럼프의 미국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의 국수주의적, 고립주의적 경제관은 국제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분명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사활적인 국제안보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생사의 기로가 강요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트럼프의 인권경시 정책이 물결효과를 발생시킬 개연성도 대단히 크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행태는 필연적으로 세계에 예시효과를 전파하기 마련이다. 부시 정부 때 아프리카나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반인권 정책을 부활시켰고 그것을 지적하는 유엔 보고관에게 “미국도 하는데 왜 우리는 못 하는가”라고 공공연하게 반발하기도 했었다. 만일 미국이 공식적으로 고문을 재개한다면 지금도 고문을 시행하는 러시아나 필리핀 같은 나라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트럼프가 기후변화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만에 하나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협정체제로부터 이탈하고 온실가스 감축의 국제 공조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진다면 트럼프 시대는 인류 종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의 비즈니스형 세계관이 경제·사회적 권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도 거의 확실하다. 오바마케어의 존폐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사회권을 부정하는 미국의 태도가 국제적으로도 사회권 보장의 대의를 손상시킬 게 뻔하다.
트럼프의 미국에 대해 세계 인권운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제적으로 그리고 일국 내에서 함께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크게 봐서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 트럼프 현상의 원인을 제공한 분배 불평등에 대해 인권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사회권이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서 상당히 무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공동체가 충족해준다는 사회권의 기본 원칙을 크게 확장해야 한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는 그 자체가 심대한 인권유린임을 선언해야 한다. 가칭 ‘불의한 불평등 철폐에 관한 국제 인권협약’과 같은 담대한 조처가 필요하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7년 1월 10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8174.html#csidxcb83fef5a281bd9a4646355f62d9a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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