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지방분권 강화, 정말 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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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1-31 15:41 조회33,9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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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지 10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대통령의 무관심이 지목된다. 대통령의 7시간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많은 사람이 대통령이 나서서 구조를 진두지휘했으면 그 정도의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여긴다. 그러니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잘못 뽑을 수 있으니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하는 지금의 제도를 바꾸자는 말도 나온다. 그 방안으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제시된다.
제도를 바꾸면 세월호 구조실패나 수습실패 같은 일이 예방될까? 지금의 승자독식제가 존속하는 한 내각제에서도 무능한 제왕적 총리가 나타날 수 있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40% 조금 넘는 득표로 과반을 차지했던 새누리당이 집요하게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훼방놓은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원집정부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간섭하거나 떠넘기다가 구조에 실패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7시간 이야기가 나올 때 종종 드는 생각은 ‘그때 뱃길 주위의 섬들이 속해 있는 전라남도 도지사는 무엇을 했을까 또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소방관을 빼고는 경찰과 군같이 구조에 투입할 인력이 없으니 제대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이 없어지더라도 중앙정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달리 지방정부에도 산하 경찰이 있고 소규모나마 가까운 바다를 관리하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군과도 이런저런 일들을 협의하는 구조가 갖추어져 있다면, 전라남도에서도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았을까? 생명을 가볍게 보는 무능 도지사가 아니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를 관할하는 무능한 중앙정부가 훼방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172명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개혁의 방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력이 넘어가고, 승자독식이라는 불공정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선거제도가 도입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한 무능 대통령이 이제 곧 쫓겨난다. 벌써 여러 사람이 그를 대신하겠다고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모두 개혁을 이야기하고 시대정신을 외친다. 낡은 안보장사를 하는 이도 있지만, 대다수는 지방분권의 강화, 공동정부, 협치, 기본소득 같은 솔깃한 이야기를 한다. 이들 예비 대선주자 중에 지방정부를 이끄는 분이 여럿 있다. 모두 지방행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그들은 대통령이 되려 한다. 이들은 예외 없이 지방권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제왕적 대통령이 된 후에도 지방에 권력의 상당 부분을 넘겨줄지 의문이다. 약속을 지켜서 지방분권을 강화한다 해도 더 많은 권력을 넘겨받은 지방정부가 제대로 운영될지도 의문이다. 무능한 지방 대통령이 지방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경향신문, 2017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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