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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날조된 허위정보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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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09 15:36 조회36,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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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허위정보’(disinformation)는 단순한 ‘허위정보’(misinformation)와는 다르다. 날조된 허위정보라는 영어 단어는 러시아말의 ‘데진포르마치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주로 정보당국 혹은 군당국이 정치적·군사적·외교적 목적으로 거짓정보를 위조하여 유포하던 것을 지칭했는데 요즘에는 민간, 언론, 기업, 개인들도 널리 활용하게 되었다.


날조된 허위정보와 프로파간다를 그저 무시해선 안 되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비판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팩트 확인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특히 “선거 시기와 중요한 공적 이익에 관련된 문제를 토론함에 있어서” 가짜뉴스를 정식 뉴스 의제로 부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있을 대선에서 한국의 언론사가 당장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과제가 아닐까 한다.


삼일절 오후에 서울시청 근처 한 카페에서 직접 마주친 풍경이다. 옆자리에서 안경을 끼고 말쑥한 차림을 한 점잖은 중년 신사풍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정미 재판관 남편이 통진당 당원이라던데.” 같이 있던 사람이 조심스런 어조로 말을 받았다. “음, 내 그럴 줄 알았어….” 말로만 듣던 가짜뉴스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었다. 이런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라면 으레 어떤 특정한 유형에 속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가짜뉴스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탈진실이라는 표현은 이미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탈진실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무 완곡하거나 현학적인 태도가 아닌가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빙빙 둘러 말을 하게 되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경우에 쓰라고 우리말이 진즉 준비해 놓은 좋은 표현이 있다. 가짜뉴스니 탈진실이니 하는 짓거리는 한마디로 혹세무민하는 ‘새빨간 거짓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금요일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중요한 선언이 하나 나왔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을 중심으로 유럽안보협력기구, 미주기구, 아프리카인권위원회의 표현의 자유 관련 대표들이 발표한 문헌이다. <표현의 자유와 ‘가짜뉴스’, 날조된 허위정보 및 프로파간다에 관한 공동선언>이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국제기구가 이렇게 긴급하게 공동보조를 취한 적은 극히 드물었다.


<선언>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제목에 나오는 용어를 간략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가짜뉴스’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통상적인 미디어 기사처럼 포장하여 내놓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사실이 아닌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생산, 확대, 유포, 재활용한다는 데 있다. 가짜뉴스는 날조된 허위정보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 날조된 허위정보란 정보 콘텐츠의 진실성이 허구이면서 어떤 대상을 기만할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유포한 메시지를 뜻한다.


이 점에서 ‘날조된 허위정보’(disinformation)는 단순한 ‘허위정보’(misinformation)와는 다르다. 허위정보 또는 오보는 잘못된 정보이긴 하나 그것의 고의성은 명확지 않다. 뜻하지 않게 오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조된 허위정보라는 영어 단어는 러시아말의 ‘데진포르마치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주로 정보당국 혹은 군당국이 정치적·군사적·외교적 목적으로 거짓정보를 위조하여 유포하던 것을 지칭했는데 요즘에는 민간, 언론, 기업, 개인들도 널리 활용하게 되었다.


무서운 일이다. 날조된 허위정보가 판치는 곳에서는 정상적인 민주주의도, 개인들 간의 최소한의 이성적인 논의도 불가능하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동의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 어떤 의사소통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날조된 허위정보가 인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선언>은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날조된 허위정보는 개인의 평판과 사생활에 큰 침해를 가할 수 있다. 게다가 악의적인 거짓정보는 폭력선동 세력에게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과 적대감이 기승을 떨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중요한 인권침해는 세 단계를 거치면서 현실로 나타나곤 한다. 우선 ‘팩트’에 의한 인지적 설득이 있고, 그것에 따라 정서적 고조가 일어난 후, 실제 인권침해 행동이 발생한다. 날조된 허위정보는 세 단계 인권침해의 연쇄모델에서 최초의 관문, 즉 ‘팩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뻔한 엉터리 주장을 접하면 그냥 웃어넘기곤 한다. 하지만 인권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간단히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절멸시키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인간 이하의 종’이라는 ‘팩트’를 부여했다. 일반국민이 유대인을 그런 식으로 인지한 후엔 그 집단에 대한 적개심이 자연스레 일었고, 더 나아가 물리적 가해도 쉽게 일으킬 수 있었다. 어떤 일에서나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권리’와 짝을 이룬 개념이었다. 세계인권선언 19조를 보라.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 권리에는 간섭받지 않고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을 넘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 그런데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권은 ‘옳은’ 정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불쾌감을 유발하며 심적 고통을 가하는 정보도 포함된다.
따라서 날조된 허위정보가 아무리 충격적이고 불쾌하고 역겹다 해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국제인권 기준으로 보아도 쉽지 않은 일이 된다. 바로 이 점에 인권운동의 딜레마가 있다. 인권침해로 직결될 가능성이 농후한 악의적 허위정보를 강제로 차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선언>은 여기서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우선 날조된 허위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국가가 가짜뉴스의 유포를 무조건 제한하려 들면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제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한국처럼) 명예훼손죄를 형법으로 규정해 놓은 것은 폐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한편, 어떤 경우에도 직간접적으로 허위정보를 고무, 유포하는 일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균형 잡기가 중요한 것이다.
둘째, 표현의 자유를 진흥하기 위해선 국가가 신빙성 있는 정보의 유통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선언>은 국가가 특히 미디어 다양성을 정책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립적이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활성화되어 시민의식이 높아지면 가짜뉴스가 공적 영역에서 자연스레 도태될 수 있다는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블랙리스트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면 허위정보가 창궐하는 썩은 늪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가는 사회 전체의 공동선에 봉사하고,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을 유지하기 위해 공익적 서비스를 하는 미디어를 후원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선 다양하고 수준 높은 미디어 콘텐츠 생산을 위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을 금지하는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선언>은 가짜뉴스를 가려낼 수 있는 미래시민의 육성을 중시한다. 학교의 정규 커리큘럼에 미디어·디지털 문해증진 교육이 포함되어야 하고, 이런 교육에는 시민사회의 관여가 필수적이다. 날조된 허위정보를 퇴치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낼 근본조건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평등, 불차별, 문화간 이해, 민주적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인간의 양성이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7년 3월 7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5510.html#csidx2dd26c9d472a82cbcbd7543db3900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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