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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세계 난민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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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24 17:59 조회30,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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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과 함께 이중섭 그림을 보러 갔다. 흔히 이중섭 하면 소 그림을 떠올리지만, 200점이 넘는 그림들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거기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작품세계였다. 사실 소 그림 자체도 민족의 알레고리라기보다 분열된 자아를 봉합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지만, 그가 즐겨 그린 아이들 그림은 이중섭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피해 내려온 남한 땅을 전전하던 그의 삶과, 일본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함께 아이들 그림을 보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탈출을 꿈꾸는 전쟁 난민이 그려낸 유토피아였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소와 대조적으로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게와 노니는 벌거숭이 아이들을 그린 유명한 그림들은, 제주도 피난 시절의 아들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방폭포가 4·3 당시 서귀포 지역 최대의 학살지였던 것처럼, 그 바다는 결코 평화로운 바다는 아니었다. 이중섭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는데, 거기서도 눈뜬 사람은 자신뿐, 아내와 아들들은 늘 눈을 감고 있다. 그들이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지 말았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중섭도 눈을 부릅뜬 소를 계속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난민이란 어떤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고향에서 쫓겨난 불쌍한 피해자로 이미지화되곤 하지만,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도피나 탈출은 또 다른 삶을 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들이 난민캠프 같은 곳에 갇혀 이동성을 빼앗기면서 ‘무력한 난민’은 만들어진다. 난민문제란 탈출이 중단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오늘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인데, 원래는 아프리카통일기구가 체결한 난민조약이 발효된 날을 기념하는 ‘아프리카 난민의 날’이었다. 그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가 당시 탄자니아 대통령이었던 니에레레다. 그는 까다로웠던 난민 규정을 대폭 완화했으며 실제로 탄자니아로 입국한 난민들에게 시민권과 토지를 제공했다. 난민에 대한 국제적인 규정이 그나마 확대된 것은 니에레레를 비롯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성과다. 그런데 니에레레가 난민 수용에 관용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목적의식적으로 ‘새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고유의 사회주의를 추구한 니에레레는 ‘우자마 마을’이라고 명명된 이상촌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평등한 마을 만들기를 표방한 이 사업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파괴하는 것이었고, 아프리카난민조약이 발효된 1974년 당시에는 기존 마을을 불살라버리면서 집단이주가 강행되고 있었다. 난민들은 새로운 국민이 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강제적인 정착이었다. (후략)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16년 6월 19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487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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