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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세계적 대혼란 시대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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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11-03 16:34 조회2,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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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계적 대혼란을 말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전면화할 당시에도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러·우 전쟁의 종착점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지난 10월7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보복공습을 가하면서 지상군 투입을 확대 중이다. 자칫 중동 전체로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가 대혼란 상태로 들어서 있는데, 미국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의 2023년 성장률은 1%대 전후로 전망되고 있다(IMF 0.7%, 러시아 정부 2% 이상). 중동 위기는 미국과 서방에 비중이 큰 문제여서 우크라이나 지원 여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미국 주도로 러·우 전쟁을 종식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러시아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더 불리해졌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최근 1년 반 사이 한국의 대외전략 변경 폭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일본이 서방 선진국 입장에서 나름 ‘균형외교’를 혼합했다면, 한국은 서방의 가치를 따르는 ‘불균형외교’로 급선회했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한다면서, G7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8월에는 한·미·일 정상회의로 내달렸다. 이러한 움직임의 반작용으로 9월에는 러시아·북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한·미·일 대 북·중·러가 적대하는 ‘신냉전’ 구조가 아직 완전히 고착된 것 같지는 않다. 북·러 회담의 공동선언문이 공식 채택되지 않았다. 북·러 관계는 한·미·일 관계의 진전에 따라 연동될 것으로 여겨진다. 2024년 미국 대선의 상황,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면, 한·미·일 관계의 환경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국도 북·중·러 구도에 가담할지는 유동적이다. 세계체제 변동의 구조는 아직 고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 대혼란 시대에, 왜 윤석열 정부는 대외전략 노선의 과격한 급변침을 시도했을까? 짐작건대, 정책적 비전이 잘 준비되지 않은 점, 확고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갖추지 못한 점이 합쳐진 것 같다.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 그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극단 편향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친미냐 친중이냐를 택일해야 한다는 가치 프레임은 현실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미국에서도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기업들이 있다. 2차 전지 산업처럼 도저히 중국을 배제할 수 없는 산업도 많다. 안보 일변도 정책에 대한 시장의 저항을 일방적으로 짓누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야권은 세계체제 변화에 대응하는 비전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현재로선 윤석열 정부와의 정쟁 때문인지 야권도 정책 내용을 보여준 바 없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진보적 정책 역량을 모아 신한반도체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한국형 뉴딜 등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담론은 현실에서 잘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그간 진보적 정책 담론에는, 분단체제론이나 한반도경제론에 내장된 세계체제·세계경제 관점이 결여되었었다고 본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뉴딜 정책은 기본적으로 일국 모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한반도체제론에서는 한국과 남북관계를 중심에 놓는 관점이 강하게 작동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반도 운전자론과 가교국가론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북 당사자의 주도성이 중요하다는 논의다. 가교국가론은 남북협력을 중심에 놓고 한반도가 신북방과 신남방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신문 2023년 10월 31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031203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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