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상]길 위에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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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2-02 13:20 조회2,2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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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시작을 정치 테러 소식으로 맞게 되어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칼은 경동맥을 가까스로 비껴나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천만다행한 일이다. 우리 현대 정치의 시작이라 할 해방정국에서 김구와 여운형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정적을 제거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여러 차례 정치 테러로 죽음 문턱에서 생환한 대표적 인물은 1월 6일 탄생 100주년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을 죽이려한 박정희 정권의 첫 시도는 1971년 5월 24일, 무안국도에서 교통사고를 위장한 것이었다. 직전의 대선에서 박정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김대중은 총선 지원유세에 나서 전국을 돌았다. 김대중의 전용차와 경호진과 비서진을 태운 택시 2대가 광주로 올라가는 무안국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14톤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그대로 돌진했다. 김대중이 탄 차는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뒤따라오던 택시는 트럭을 피하지 못해 충돌했고 세 사람이 즉사했다. 김대중이 다리를 저는 영구장애인이 된 사건이었다. 이 내막을 모를 리 없으면서 다리 저는 김대중을 흉내 내며 조롱한 모 연예인을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두 번째는 김대중이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 5명에게 납치된 사건이다. 중정 요원들은 곧장 김대중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여러 정황으로 현장에서 죽이지 못하고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갔다. 김대중의 온몸을 묶고 돌을 매달아 수장(水葬)하기 직전, 미국과 일본의 합동작전으로 난감해진 그들은 살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8월 13일 밤 10시경에 그들은 김대중을 동교동 골목에 버렸다.
세 번째는 그 유명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다. 박정희가 죽고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은 이번에는 확실하게 김대중의 목숨을 앗으려 했다. 1981년 9월 17일 군법회의에서 1심 사형선고, 1982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확정판결을 선고하면서 김대중의 운명은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전 세계의 양심있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김대중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면서 부담을 느낀 정치군부는 김대중을 미국으로 추방하는 형식으로 타협했다. 그 이후 국민과 함께 해온 김대중의 험난한 여정과 마침내 이룬 정권교체 등의 드라마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새해 초입에 발생한 정치 테러는 피의자 일개인의 일탈행위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퇴행이 정치적 증오와 혐오를 공공연하게 무대 위로 소환해낸 것이다. 평생에 걸쳐 ‘행동하는 양심’으로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말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선생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쓰라”고 말씀하셨다.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아 1월 10일 <길위에 김대중>이라는 다큐 영화가 개봉한다. 천만관객을 훌쩍 넘었다는 영화 <서울의 봄> 앞과 뒤의 진실을 알고 싶은 분들께 <길위에 김대중>을 강력히 추천한다. 우리 역사의 한복판을 걸어온 김대중의 일생을 그린 영화를 지인들과 함께 보고 적극 권하는 일도 민주주의를 위한 작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과 뜻을 기리는 일에서 민주주의의 봄, 좋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 다시 시작된다면 그 분도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지 않을까.
정도상 소설가
전북일보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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