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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다시 중심에서 변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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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6-10 14:59 조회1,2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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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3월 중순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한의 고위외교관을 만났다. 4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기 전이다. 3월 초 우리 특사단의 방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결정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안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동의했다.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됨을 발표한 직후였다.


북한 외교관에게 대화에 나온 이유가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제재 때문이냐며 돌직구를 날렸다. 이 외교관은 미소까지 지으며 “김 선생, 우린 이것보다 더 힘들 때도 견뎌냈습니다. 고작 이 때문에 나왔겠습니까? 더 잘 살려고 하니까 나온 거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던진 “그래도 제재가 인민들에게 스며들고 있습니다”라는 한마디가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의 말을 통해 현재 북한이 직면한 걱정과 두려움보다 더 나은 인민의 미래를 위한 선택임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 외교관을 만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있은 지 열흘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도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만 발표하고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왜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김 선생, 우린 아직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합니다. 무엇보다 남측에서 만든 것이니 김 선생이 돌아가면 꼭 잘될 수 있도록 힘 많이 써 주십시오”라고 했다. 다소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이번에 잘못되면 앞으로 남·북 관계마저도 힘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 대한 믿음이었고 간절함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외교 안보 관련 이야기를 다룬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출간됐다. 제목처럼 문재인 정부 시작점에 우리가 변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임하는 5년간 이룬 외교안보 분야 성과는 우리가 국제사회 중심에 당당히 서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편이 답답했던 것은 남북 관계에서만큼은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하노이 노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평양선언을 통해 영변 핵 폐기 약속을 받아왔으니 미국이 상응한 조치만 강구하면 훌륭한 딜이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으니 미국이 거부해 노딜로 끝날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고까지 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관광 재개에 있어 제재를 앞세우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제재를 무시하고 재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미국 측 말만으로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관심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것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거라도 해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한 부분은 가슴을 더 답답하게 했다. ‘언젠가 재개된다면’이라고 했지만, 북한이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고 나온 상황에서 북한 외교관의 말처럼 이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진보 진영의 결과론적 비판에 대해 이루지 못한 부분이 아니라 이루어 낸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고 썼다. 이루어 낸 부분은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루지 못한 부분은 반성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한다. 이루어 낸 부분만 평가받고자 한다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나아간 지난 정부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남북 관계만큼은 중앙에서 다시금 변방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 과연 이번 정부 때문만인지 묻고 싶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국민일보 2024년 5월 20일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16097570&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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