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태양의 후예’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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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02 16:45 조회30,3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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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이쁜 게 아니라 이쁜 거랑 닮았어요?’와 같은 가볍게 찰진 말놀이의 순간에 홀려 판타지의 세계로 시간이탈을 했다. 기술의 진화 덕택에 본방사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한몫했다. 종방을 한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문화현상이 된 <태양의 후예>에 접속했다. 시청률이 무려 40%에 근접했고 중국 동영상사이트 누적 20억뷰를 기록한 대세 문화흐름에는 편승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는 했지만, 판타지에 몰입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의 심정에 뒷자리에서나마 참여하고픈 욕망이 앞섰다. 당혹스럽게도, ‘조국’이란 꼭짓점과 주인공들 스스로 ‘속물’되기를 통한 선 만들기의 얽힘이 절묘하게 시선의 마주침과 엇갈림으로 변주되는 사랑의 방정식에서, 변수역할을 하는 국제정치를 ‘태후’에서 읽게 되었다.
판타지는, 허구 너머다. 지금 여기 없는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 허구의 본령이다. 판타지의 너머는, 도달이 불가능한 목표를 현실과 과정에 대한 핍진한 묘사 없이 실현하는 데 있다. 판타지란 양식의 실재와 인기는 현실비판과 긍정의 미래를 매개해 줄 그 무언가를 가상현실의 판타지가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가상현실이 허위라 하더라도 대중의 무의식적·의식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태후를 판타지라 한다면, 억울의 강변이 있지 싶다. 주인공이 온몸으로 총알을 막으며 연인을 구하고, 사망한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이 북한 친구의 도움으로 귀환해서 100년 만에 눈이 내린 곳에서 연인을 만나는 환상의 실현조차, 없음으로 있음의 필요를 증명하는 리얼리즘의 역구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현장은 ‘우르크’란 가상국가다. 파병된 한국군과 의료봉사단이 함께하는 장소다. 파병이란 군사적 개입의 이유를 태후는 묻지 않는다. 한반도가 아닌 어디선가 전쟁이 나면 투입되는,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지 말입니다’의 주인공이 속한 특전사 알파팀이 ‘자유와 평화’란 이름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에, 질문 자체를 봉쇄했을 것이다. 그 작전이 미군과 연관되어 있음은 태후 도처에 암시처럼 깔려 있다.
국가이익과 보편적 이익의 충돌의 백미는, 아랍의 지도자가 혼수상태로 파병지로 실려와 의료봉사단과 조우할 때다. 만약의 의료실수로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우려하는 한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지도자의 치료는 자국의 의사가 맡아야 한다는 아랍인들은, 목적은 다르지만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국가이익을 염려하는 척하는 정치인을 매번 열 받게 하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죽음을 통해 생명을 지키는’ 군인이 세계사를 책임질 생각은 없지만, ‘생명을 위해 싸우는’ 의사인 연인의 편을 드는 형국이다. 의사출신의 평화활동가는, 태후의 원작으로 알려진 ‘국경없는의사회’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반국가, 반자본의 길을 가는 평화활동가는 태후 배역들의 선망의 친구다.
국제정치의 특수형태인 남북관계도 태후에서 뺄 수 없는 구성요소다. 남한의 정책결정자는, 알파팀이 북한 특수부대 요원을 구하고 북한대표의 비리를 이용해 남북합의를 이루어낸다. 남북관계에서 나타나곤 하는 남북의 공모다. 국제정치의 수면 아래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남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은 각자의 조국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서로의 생명을 구해주는 협력을 선사한다. 그러한 장면은, 태후가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판타지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경향신문, 2016년 5월 22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2205303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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