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염무웅의 해방 70년, 문단과 문학 시대정신의 그림자](5) 포연 속으로 빨려들어간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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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02 16:56 조회31,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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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상처 입은 세대의 ‘전후문학’
1957년 2월 초순쯤 충남 공주 우리 집에는 공주사대 수험생이 하숙을 들었다. 그는 멀리 목포에서 이불 보따리뿐만 아니라 책이 가득한 사과 궤짝도 서너 개 가지고 왔다. 서류전형만으로 고교 합격을 통보받은 뒤 <삼국지> <수호지> <청춘극장> 으로 소일하던 나는 굶주린 짐승처럼 눈을 번뜩이며 그의 궤짝으로 달려들었다. ‘사상계’ ‘현대문학’ ‘문학예술’ 같은 잡지들도 흥미를 끌었지만, 무엇보다 내게 잊지 못할 충격을 준 것은 손창섭 단편집 <비 오는 날>(일신사, 1957년)이었다.
열병을 앓듯 손창섭의 소설에 빠져 하루를 보내고 나자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망연한 느낌, 마치 그날로 소년시대가 마감되고 성인들 세계로 진입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손창섭 소설이 뿜어내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그동안 학교와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고, 그 충격은 독서에 대한 나의 소년적 취향을 단번에 격파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사상계’를 통해 함석헌 선생의 글에 심취하면서도 그와 전혀 색깔을 달리하는 손창섭·장용학·선우휘·오상원의 애독자가 되었다. 흔히 ‘전후문학’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작가들에게 빠져든 것이다.
여기서 잠시 거칠게나마 우리 근대문학의 세대별 전개과정을 개괄해 보자. 누구나 알듯이 과도기의 신소설·신체시를 극복하여 지금도 읽을 만한 우리말 문학을 개척한 것은 이광수·김동인·염상섭·현진건·이기영·김억·김소월·한용운·박영희·김팔봉 등 제1세대의 작가들이었다. 다음 제2세대는 이태준·채만식·이효석·박태원·김유정·정지용·임화·김기림·백석·이상·최재서·백철 등 1930년대 문학의 주력부대로서, 이 두 세대에 의해 한국 근대문학의 여러 장르들은 오늘의 모습으로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잇는 것이 김동리·김정한·황순원·유치환·서정주·박목월·조연현 등인데, 이들은 대체로 1930년대 후반에 등단하여 해방 후에 본격 활동을 개시, 오랫동안 남한문단의 ‘문학권력’으로 군림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살펴보려는 ‘전후문학’은 한국 근대문학사의 제4세대인 셈이다. 1930년대 후반 및 1940년대 출생자들은 나 자신의 경험이 말해주듯 전후문학의 직접적 영향 아래서 자라난 ‘포스트 전후세대’이자 제5세대라고 할 수 있다.
■‘뿌리 뽑힌 존재’였던 ‘전후 문학인’
세계문학에서 ‘전후’는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가리킨다.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전쟁의 야만과 파괴를 가장 혹독하게 겪은 독일(서독)에서 나타났다. 괴테나 쉴러 등의 고전문학 전통에 연결되어 있던 토마스 만이나 헤르만 헤세와 달리 전후에 등장한 볼프강 보르헤르트, 하인리히 뵐, 루이제 린저, 귄터 그라스 등은 모든 것이 폐허(이른바 ‘제로 포인트’)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각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에서 ‘전후’는 드물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지칭할 수도 있으나(가령, 백철의 <전후 15년의 한국소설>과 김춘수의 <전후 15년의 한국시>라는 글은 8·15를 기점으로 ‘전후’를 계산하고 있다), 보통은 6·25전쟁 이후를 가리킨다.
이렇게 되면 세대구분상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다. 가령, 1920년생인 조지훈과 조연현은 전전세대로 분류되는 반면 1919년생 구상과 전광용은 늦은 등단 탓에 그렇지 못하다. 그 밖에 박연희·이범선·추식·장용학·김광식·유주현·손창섭·이병주·김성한·선우휘 등도 모두 1920년 전후에 태어난 동년배들이지만 문학적 이력은 제각각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들에게 학병세대’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실상 이 작가들 가운데 학병 경험자는 장용학·김성한·이병주뿐이다. 김수영·김춘수·김종삼 등에서 보듯 시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말의 이른바 ‘암흑기’부터 6·25전쟁까지의 가장 험난한 시대에 자신들의 청춘을 희생으로 바쳐야 했던 이 세대야말로 ‘한국판 로스트제너레이션’이라 부를 만하다. 어쨌든 이들의 문학은 장용학·손창섭·선우휘처럼 전후문학의 대표로 꼽히기도 하고 박연희·유주현처럼 앞세대의 문학과 공유하는 바가 더 많기도 하며, 그런가 하면 이병주처럼 1960년대에 뒤늦게 등단해 세대소속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착종은 전후세대와 포스트전후세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고은·신경림·최인훈·유종호는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6·25전쟁을 겪었으나 그들의 문학은 전후문학 자체에 속한다기보다 전후문학이 퇴조의 조짐을 보이는 시대의 감정과 정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전후문학에서 핵심적 경험은 당연히 전쟁이다. 총을 들고 전선에서 겪었든, 아니면 후방에서 피란살이를 했든 그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전후문학의 구성원 대다수가 이북이 고향인 데서 알 수 있듯 그들은 현실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피란민, 즉 뿌리 뽑힌 존재들이었다. 피란 자체가 전투행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사실상의 전쟁이었다. 아마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이 6·25전쟁 시기에 생사를 넘나드는 수난을 겪었을 것이다.
■한국근대문학사의 ‘제4세대’
물론 참전군인 출신도 적지 않았다. 선우휘·전봉건·서기원·하근찬·송병수 등이 그렇고, 희곡작가 박조열은 12년이나 병사로 복무했다. 강용준은 인민군으로 입대했다가 국군으로 제대했으며 이호철은 인민군으로 전선에 동원되었다가 낙오병으로 월남했다. 신동문과 강민은 적잖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똑같은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전쟁이 터지고 나서 악명 높은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었으나 굶어 죽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탈영하여 공군에 자원입대한다. 그들은 공군이 운영하는 결핵병실에서 우연히 환자와 병실 관리자로 만났다가 시를 매개로 평생의 문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사상계’ 독자가 되던 첫해(1957)에 그 잡지에 연재된 오상원의 짧은 장편소설 <백지의 기록>이 다른 어느 작품보다 강하게 전후문학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넷. 제일 젊음이 발랄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미 무너져 버린 젊음이었다. 전쟁으로 3년간이란 세월이 포연 속에 사라진 것이다. 집에는 벌써 불구가 된 형이 돌아와 있었다. 오른손이 보기 흉하게 몽둥어리가 되고 다리가 하나 절단되어 있었다.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몸 성한 작은 아들을 껴안고 불구가 되어 맏아들이 돌아오던 날보다 더 목메어 울었다. 아버지는 다만 묵묵히 작은아들을 지키면서 눈물을 머금고 서 있었다.”
이 서두부분이야말로 그대로 소설 속의 모든 상황을 대변한다. 의대 3학년 재학 중 군의관으로 소집된 형은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왔고, 상대 재학 중 입대한 동생은 황폐해진 정신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이들 형제와 그들이 사귀던 여자들, 그리고 그들과 부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고통을 추적하면서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내용이다.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인 구성인데, 그런 만큼 전형적인 전후소설이기도 하다. 일찍이 고은 시인은 장편 에세이 <1950년대>(1973)에서 “그 50년대의 정열과 광태와 퇴폐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폐허를 사랑한다는 뜻이 된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라고 언명한 바 있는데, <백지의 기록>은 이 언명을 소설적으로 구현한 작품인지 모른다.
염무웅 |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2016년 5월 16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62141005&code=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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