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수]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이야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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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9-27 18:15 조회30,8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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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해보면 알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과장이 생기고 거짓이 끼어든다는 걸.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흰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다. 단답의 말조차 순간을 모면하려는 작은 거짓과 너무도 쉽게 공모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것은 때로 인간관계의 피로를 줄이려는 방어기제 같은 것이기도 할 테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최악의 하루’는 그렇게 별것 아닌 작은 거짓말이 쌓이고 얽히면서 곤경에 빠지는 은희라는 젊은 여성의 하루 이야기다. 서촌의 골목길과 남산 숲길이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영화는 보행의 시선과 리듬으로 섬세하게 드러나는 서울의 ‘낯선’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종종 좁게 포착된 도시의 풍경들로부터 우리 쪽을 응시하는 듯한 ‘낯섦’을 안긴다면,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는 순하고 맑은 호기심으로 우리가 이 도시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되돌려주려는 것 같다. 그런 감독의 태도는 인물의 소극(笑劇)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에도 일관되게 담겨 있어 시종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영화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은희에게 ‘최악의 하루’를 선사하는 ‘작은 거짓말’은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티브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스스로를 가리키고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은희가 서촌에서 만나 길을 안내하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는 도입부 내레이션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야기를 만들어낸 화자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영화의 말미에 남산에 홀로 남은 은희 곁에 다시 나타나 하루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사실 자신의 책을 번역 출간한 한국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로 황당한 일들을 겪는 료헤이의 하루도 은희의 ‘최악’에 못지않다. 물론 두 사람 다 김종관 감독이 만들어낸 허구 속 인물들이고 그들이 겪는 곤경도 그렇다. (후략)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국일보, 2016년 9월 8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9b3f858dc1004372a86e567d8179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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