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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지진, 각자도생을 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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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0-19 17:56 조회30,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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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진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온 규모 4.5의 지진을 비롯해서, 2주가 넘게 흐른 지금까지 440여 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 지난 7월에도 울산에서 강한 지진이 있었고, 앞으로도 길게는 수개월 동안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니 한국사회가 당분간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것은 전진(前震)일 뿐이고 곧이어 훨씬 더 강한 지진이 본진(本震)으로 뒤따라 올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는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해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일단 지진 발생 지역 주변에 밀집해 있는 원자력발전소들이나 활성 단층대를 따라 지나가는 KTX 노선도 문제지만, 이번 지진의 진앙인 경주 자체가 월성 원전 1~4호기와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다. 이미 이번 지진 당시 정지 값이 넘어섰는데도 경주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았다는 보도가 들려오는 상황이고 보면,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결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대참사의 가능성을 두고 그저 근거 없는 걱정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 시점에서 두려움이 증폭되는 이유는 많은 시민이 세월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지진의 위험 앞에서도 국가가 부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재난을 알림 문자는 뒤늦게야 발송되었고, 그나마 받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지진 방재요령에 대해서도 국민안전처는 대비해 둔 것이 신통치 않고, 일본 도쿄 도가 발행한 한글 매뉴얼을 참조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알음알음 추천되는 상황이다. 이미 오랫동안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는 그 사실을 묵살 내지는 은폐해 왔고, 활성단층 주위로 방폐장을 건설하고 원전 추가 건립계획까지 밀어붙였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국가 부재를 넘어 국가 자체가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는 진단은 적절하다.


이러한 공포 상황에서 모 매체는 지진 대비에서 시민들의 “각자도생도 나쁘지 않다”는 글을 실었다. 정부가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도 없고, 일본만큼 역량을 쌓으려면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이니 내가 나를 지키는 각오를 다지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개인들의 안전 불감증의 문제도 모르는 바는 아니고 지금같이 부실한 국가를 믿고 재난대비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원론만 고집해서는 개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지진 발생 사실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든다든가, 재난을 대비할 개인 훈련 등을 이 시점에서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선 재난 대비를 개인에게 맡기는 순간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차이와 불평등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지진 발생상황을 핸드폰 문자로 알려준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다. 우선 시민 모두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설령 문자를 받아 지진이 발생한 것을 알았다고 한들, 질병이 있는 사람이나 어린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 노인들은 대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의 경우에는 시각ㆍ청각ㆍ지체ㆍ인지 장애 등 장애 종류에 따라 다른 접근과 배려가 필요하다. 대피소에 반려동물을 동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는데, 일단 지진에 대비한 대피소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 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한국일보, 2016년 9월 29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44f40ea76e2e415e935c19f135a71c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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