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최악은 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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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12 16:51 조회35,6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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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초월하는 비리와 불통 ‘어쩔수 없다’ 체념이 부른 재앙
내년 위해 땅심 돋우는 농민처럼 새로운 기운 모아 변화 이끌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언제 이렇게까지 망가져 있었던 것일까. 최근 들어 청년들 사이에서는 한국을 지옥에 비교해 ‘헬조선’이라 부르는 게 유행이다. 모든 연령에서 고루 높은 자살률이나 올라갈 기미가 없는 출산율, 그리고 점점 하락하고 있는 삶의 만족도 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정말 버티고 살아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널리 자리하기는 했다. 세월호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그 이후의 처리 과정을 보면서 정말 잔인한 사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터져 나오는 여러가지 비리나 불통과 변칙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바가 있다는 데는 넓은 공감대가 확인된다.
심지어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정황도 나을 것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본의 아베 정권과 러시아의 푸틴 정도를 넘어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설마 했던 많은 미국민들뿐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단지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반이민정서를 부추기는 정책적 방향만 문제된 것이 아니라 백인우월주의나 여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후보 스스로도 무수한 성추행을 일삼아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후에도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로이 주목받게 된 단어가 극악정치나 악덕정치라고 번역되는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라는 개념이다. 본디 민주주의는 대중들이 모여서 함께 잘 숙의한 결과를 미리 정한 절차에 따라 정치에 직접 반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사회 속 인적·물적 교류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직접 민주주의보다는 대중들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할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사람을 이끌 능력과 공중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진 사람을 뽑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보통 사람보다 나은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 가운데서도 최악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바로 이렇게 최악의 사람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 상황을 가리켜 극악정치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남의 나라든 내 나라든, 인간적인 품성으로 보나 여러 자질로 보나 보통만도 못한 최악의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어디서든 악덕정치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나빠지는 것을 어차피 일어나게 되어 있는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보고 제대로 된 선택을 포기하는 현상을 목도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세상이라는 우리의 체념 자체가 더 큰 재앙을 부르곤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지난 10여년 동안 삶은 불안정해지고 빈부 사이의 격차가 커졌으며 승자가 성공의 과실을 독식하고 금전적 가치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해 왔다.
이런 흐름을 거슬러 좀 다르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원과 격려보다는 비웃음이나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뭔가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큰 흐름 속에서 저마다 각자도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후략)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
(농민신문, 2016년 12월 12일)
기사 전문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271178&subMenu=articleto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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