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다케시] 어리석은 자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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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2-12 21:17 조회33,1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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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시골의 공무원이거나 관변단체의 지회장 등으로 A급 전범이 될 정도의 고위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사소한’ 전쟁 협력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결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47년에 시행된 공직추방에 걸린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1951년에 추방이 해제되었지만, 그들은 공직추방이 해제되었다고 해서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용서된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뒤에도 공직에 복귀하지 않고, ‘아즈마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반성하는 마음을 다지며 모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의 잘못이나 공직추방도 세상에서 잊힐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임 결성 10주년이 되는 1961년에 비석을 세운 것이다.
전후 일본의 평화운동이 대부분 피해 경험을 토대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가해 경험을 공공의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어리석은 자’라는 ‘오명’을 실명과 함께 후세에 남기려고 했다. 처음에는 이 비석이 전사자들을 모신, 영령전이라 불리던 신사에 세워진 이유도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희생자가 바로 전사자들이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유족회는 이 비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리석은 자’라는 말이 전사자를 모독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비석을 세운 이들은 자신들이 어리석어서 귀한 아들을 죽게 만든 것이니 그 반성의 뜻으로 여기에 세웠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이해받지 못했다. 그 뒤 비석은 근처에 있는 절로 옮겨져 가해의 기억과 피해의 기억은 분리되었다. 현재도 그 신사에서는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지만, 어리석은 자의 비가 사라진 그곳에서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의 문제는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기억의 장치는 제거된 것이다.
이 비석은 패전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 역사적인 기로에 서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도 이런 장치일지 모른다. 이 암담한 사회를 만들어낸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권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학교, 회사, 관공서, 군부대 등등 사회 곳곳에 무수한 어리석은 자의 비가 세워져 이 끔찍한 시절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이 시대와 결별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후략)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17년 2월 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1384.html#csidxa3afc1ab25dc6a69d14ed9696004e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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