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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망각의 걸림돌과 도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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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18 17:48 조회30,9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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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동편에는 역사물길이라는 게 있다. 조선 개국부터 광장이 조성된 2009년까지의 햇수를 따서 617개의 검은 돌 판에 기념할 만한 역사적 사건들을 새겨 놓은 그 곳에서는 당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담은 주의 안내판이 있었다.


“역사물길로 들어오시면 매우 위험하오니 들어오지 마십시오.” 물론 미끄러질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말고 조심하라는 이야기였겠지만, 역사라는 것을 개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거대한 물결로 보면서 휩쓸리지 않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소시민들의 정서나, 가족나들이로는 몰라도 역사니 사회니 바꾸겠다는 생각으로는 이 광장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당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제 세월호 분향소와 함께 광화문 광장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사실 당시의 광장은 역사 연표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기억이 될 수 없으며, 장소의 역사성을 살려낼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편 엊그제 ‘기억의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만난 독일 작가 군터 뎀니히의, 우리말로는 걸림돌을 의미하는 스톨퍼스타인(Stolperstein) 작업은 도시가 역사적 기억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독일 나치 시기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희생자가 자기가 원해서 머물렀던 마지막 거주지를 중심으로 길 위에 놋쇠로 된 명판을 설치하는 추모작업을 해 왔다. 발부리에 채이고 사람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걸림돌은 희생자가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사람일 뿐 나의 일상적 공간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는 전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바로 이 곳에 희생자가 한 때 살았으며, 그 사람은 그저 희생자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이름을 가졌던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작업이다. 여기에 필요한 설치비용은 대체로 개인 후원자들이 제공했지만, 또 다른 개인들이 내 땅에는 설치할 수 없다며 개인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공공기관들은 가까운 지자체 소유의 부지나 공유지에 설치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이 작업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후원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였다.


1992년 이후 베를린에만 약 5,000개, 유럽 전역에 5만3,000개 정도의 걸림돌이 설치되는 동안 물론 논란이 없었을 리 없다. 나치의 근거지였던 뮌헨에서는 걸림돌 프로젝트 자체를 거부했으며, 집값에 대한 우려 같은 매우 낯익은 반대도 있었고, 걸림돌에 대한 훼손도 이어졌다. 실제의 걸림돌은 도로면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정도로 설치되는 것이었지만, 걸림돌에 넘어지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걸림돌에 채여 휘청거리게 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당신의 머리와 가슴입니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걸림돌이란 말하자면 무관심과 무지 속에 망각으로 젖어드는 일상의 흐름이 순탄하지 않도록 막는 장치인 셈이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한국일보, 2016년 4월 7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f6388a4c271743c8a015ea72bdc1a6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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