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수렵채취인의 생존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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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18 17:51 조회31,1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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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자들은 환경 문제의 뿌리를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수렵채취인적 심리 특성에서 찾는다. 환경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크게 중시하기 때문이다. 당장 손에 들어오는 100만원의 현금이 1년 후에 주어질 200만원의 어음보다 달콤하고,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돼 지금 당장 불을 밝혀주는 전기가 수십년 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대형사고나 핵폐기물보다 매력적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의 이런 현재중심적 사고가 석기시대의 오랜 수렵채취 기간 동안 형성된 것으로 본다.
수렵채취 시대에는 생존이 쉽지 않았다. 먹을 것을 제공하는 자연 속에는 사방에 위험이 깔려있었다.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게다가 먹을 것을 오래 저장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먹을 것이 많이 얻어걸린다고 해서 그것을 나중을 위해 쌓아두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다. 이웃에게 선물하면서 나누어 먹는 것이 훨씬 유리한 선택이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데, 자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도 의미없는 일이었다. 현재 중시는 수명이 짧을수록 더 심해진다. 남성의 현재 선호가 여성보다 더 강한 이유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일찍 죽기 때문이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생각할 여유와 판단을 도와줄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베팅을 수시로 해야 한다.
현대인의 삶은 석기시대 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석기시대적 사고가 지배하는 이유는 석기시대에 비해 현대적 삶의 기간이 훨씬 짧았기 때문이다. 수명이 크게 늘어났고, 복잡한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장기적 사고와 계획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간 게 오래되지 않았기에,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기후변화나 원자력발전 같은 문제가 한쪽으로 제쳐지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이 사회를 제대로 끌고 가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은 석기시대적 사고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 있어야 한다. 세계 전체를 들여다보면 이런 정치인이 간간이 눈에 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우루과이의 무히카 전 대통령이 그런 정치인에 속할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총선 공천과정을 보면 오히려 정치인들의 수렵채취인적 심리만이 확연히 드러날 뿐이다.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은 단기적 생존을 위한 본능적 베팅으로 보인다. ‘진박’의 자기 사람 심기와 김무성의 ‘옥새파동’ 모두 오직 총선 후의 자기 생존을 위한 수렵채취인적 합리성의 발현 같다. 문재인의 “호남지지 없을 경우 대권도전 포기 선언”도 생존을 위한 베팅이라는 점에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더민주 비상대책위의 비례대표 공천은 수렵채취인적 심리특성을 가지고도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수렵채취인들도 그러한 판단과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6년 4월 13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32258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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