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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직영 전환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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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24 17:57 조회29,8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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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슬픈 일이 일어났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더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조금의 조심’도 이루어지지 않고, 끊이지 않고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가 난 후에는 조심을 누가 해야 했는가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진다. 그리고 피해자인지 그가 소속된 하청업체인지 아니면 원청업체인지 다투는 동안 사고는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잊혀질 때쯤 다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조금도 바뀌는 게 없다. 지옥 같은 한국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이번 서울지하철 사망사고도 잊혀지고 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애도와 더불어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젠가 바꿀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작년 8월 말 서울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청년이 숨졌을 때 녹색세상에 쓴 칼럼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이다. 그후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고, 똑같은 책임 미루기와 똑같은 후속대책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때는 사고가 일어난 지 3일 지나서 서울메트로 사장이 서울시장에게 후속대책을 보고했다. 이때 이미 위험한 작업의 직영전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장이 직접 스크린도어 수리 같은 위험한 작업은 서울메트로 직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앞으로는 이런 사고가 줄어들 것 같다. 이 결정에 대해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라는 평가가 대다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직영전환은 지금까지 외주화가 많은 사망사고를 낳았기 때문에, 위험을 줄이는 좋은 방법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낡은 해결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직영전환이라는 낡은 방식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 선택은 올바른 방향이 아닐지 모른다. 지금 세상은 급속히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다. 일과 일자리도 이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큰 조직에 구속되지 않고 네트워크에만 연결된 상태에서 일하는 개인들, 평생 직장에 얽매이기보다 프로젝트별 계약을 맺어서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는 가운데 낡은 것을 파괴하는 혁신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큰 조직들도 낡은 방식으로 일해서는 도태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직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구글 캠퍼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파괴적 혁신을 끌어내기 위해서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구글처럼 혁신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기업들과 공공조직들이 꽤 많다.


서울지하철은 공공부문에 속한 큰 조직이다. 천만 시민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고 있기에 파괴적 혁신은 위험천만한 시도로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관피아 제거, 합리적 투명 경영이라는 낡은 방식으로는 서울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메트로의 경영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울시의 운영에는 시민운동 출신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은 현재의 악을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에 집중하지 미래를 향한 혁신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물론 시민운동 출신 시장과 이들의 노력 덕분에 그동안 서울 시정은 시민 친화적으로 꽤 바뀌었다. 하지만 미래 지향적인 파괴적 혁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6년 6월 8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82048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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