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염무웅의 해방 70년, 문단과 문학 시대정신의 그림자](7) 실존주의, 얼어붙은 문학에 ‘저항·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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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7 17:19 조회33,1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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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환시대를 달군 참여문학 논쟁
6·25전쟁의 발발로 조성된 비상체제를 정상체제로 돌이키려는 움직임은 이미 1950년대 중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령,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는 통합 야당으로서 민주당의 발족(1955년)과 이듬해 장면(張勉)의 부통령 당선은 정치의 복원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문단에서의 새로운 기운도 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후문학’으로 통칭되는 젊은 세대 작가와 시인들의 대거 등장이지만, 그와 더불어 주목할 것은 새로운 문학을 대변할 이념의 새로운 활력이었다.
이 시대의 문학이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요란한 반응을 얻은 것은 프랑스로부터 건너온 실존주의였다. 실존주의 사상은 이미 1940년대 말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지만, 지적 유행으로서의 앙가주망(현실참여) 이론이 본격 상륙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1957년 알베르 카뮈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유행의 확산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 무렵 문학 공부에 입문한 필자도 카뮈의 소설 <전락>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논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의무처럼 읽은 기억이 있다.
■문단에 널리 퍼진 실존주의적 사고
실존주의 개념의 전파에 앞장선 것은 자타가 공인하듯 평론가 이어령이었다. 지난달 이 지면에서 지적했듯이 그는 날렵한 글솜씨로 기성문단의 복고주의와 침체성에 잇달아 공격의 화살을 날려 단숨에 젊은 세대의 기수로 떠올랐다. 이어령 자신은 오래지 않아 자기 글에서 ‘참여’ ‘저항’ 따위의 꼬리표를 떼고 문화론적 에세이 내지 기호학적 분석비평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와 더불어 실존주의 이론의 국내 담당자도 당연히 김붕구·정명환 등 불문학자들로 교체되었지만, 실존주의적 사고의 영향은 생각보다 널리 퍼졌다.
하지만 당시 ‘절망’ ‘불안’ ‘한계상황’ ‘자유’ ‘책임’ 같은 실존주의의 낙인이 찍힌 낱말들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 것은 실존철학 자체에 대한 경도 때문도 아니고 단순히 경박한 유행심리나 외래사조에 대한 저자세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로 넘어오는 우리의 불안정한 시대상황 자체가 실존주의적 언어에 그 나름의 현실설명력을 부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 문학담론의 또 다른 기원 중 하나는 해방기의 치열했던 논쟁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민족문학’이란 똑같은 간판 밑에서 각기 다른 목표를 지향하던 여러 갈래의 논의들은 미 군정과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대부분 축출되거나 소멸하고 오직 김동리·조연현의 ‘순수문학론’만 남아 남한 문단의 독점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때 해방기 ‘민족문학’의 절실한 기억을 ‘순수문학’의 획일적 풍토 위에 소환한 것은 정태용의 <민족문학론>(현대문학, 1956년)이었다. 지하에 묻혀 있던 이 논문의 독특한 의의를 재발견한 것은 최원식 교수의 <민족문학론의 반성과 전망>(1982년)인데, 그의 설명대로 정태용의 문제의식은 “당대 문학에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한 외로운 목소리였지만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과 1970년대의 민족문학론을 연결하는 극히 중요한 고리”였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였든 해방 후 분단시대였든 우리 문학의 불변의 전통 중 하나는 불의의 권력에 대한 불굴의 비판정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전시체제와 같은 강압적 상황에서는 비판정신이 표면에 몸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다. 1950년대 말 ‘저항’ ‘참여’ 같은 구호가 다수의 호응을 얻었던 것도 거듭 강조하지만 프랑스 상표가 붙은 실존주의의 매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 개념들은 남북 분단과 6·25전쟁으로, 그리고 이승만식 반공냉전체제의 압박으로 얼어붙었던 우리 문학의 비판정신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4·19는 불모의 땅에서 이루어진 전복적 사건이었다.
4·19의 의의와 관련해 최인훈의 소설 <광장>(새벽, 1960년 10월)은 기념비적 위치에 있지만, 비평적 발언으로서는 시인 신동엽의 에세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시인정신론’(자유문학, 1961년 2월)은 신동엽의 시적 사유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중요한 논문이다. 그러나 그 글은 ‘원수성(原數性)’ ‘차수성(次數性)’ ‘귀수성(歸數性)’ 같은 특유의 낯선 용어를 가지고 자신의 시론을 전개함으로써 보편적 설득력을 얻는 데 한계를 보인다. 반면에 <60년대의 시단 분포도>(조선일보, 1961년 3월)는 제목이 말해주듯 한국의 현대시를 복고적인 향토시, 현대적인 감각파, 언어 세공파(細工派) 등 평면적으로 분류하면서도 그러한 주류적 경향과 구별되는 ‘신저항시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그는 이론가는 아니었다. 시인으로서 그는 당대의 복고주의와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서정세계를 작품 속에 구현했던 것이다.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격렬한 논쟁
평론집 <저항의 문학>(경지사, 1959년)을 남기고 떠난 이어령의 자리를 메운 것은 최일수·김병걸·김우종·홍사중·임중빈 등의 비평가들이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김우종이었다. 그는 1950년대 말에도 김동리의 ‘중간소설론’에 대해 시비를 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파산의 순수문학’(동아일보, 1963년 8월), ‘유적지(流謫地)의 인간과 그 문학’(현대문학, 1963년 11월), ‘저 땅 위에 도표를 세우라’(현대문학, 1964년 5월), ‘순수와 자기기만’(한양, 1965년 7월) 등 평론을 잇달아 발표하며 순수문학의 공허성에 맹공을 가했다. 뒤늦게 논쟁에 뛰어든 김병걸 역시 ‘순수와의 결별’(현대문학, 1963년 10월), ‘참여론 백서’(현대문학, 1968년 12월) 등 논문으로 문학의 사회성·역사성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이 무렵 누구보다 부지런히 순수문학 진영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임중빈일 것이다. 그의 평론집 <부정의 문학>(한얼문고, 1972년)은 비판적 열정에 불타는 한 젊은 비평가가 1960년대의 아직 살벌한 풍토에서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문학적 일방주의에 어떻게 좌충우돌 부딪치고 피를 흘렸는지 증언하는 전투의 기록이다.
물론 ‘순수’ 쪽의 반론이 없을 수 없었다. 예컨대 이형기의 ‘문학의 기능에 관한 반성―순수옹호의 노트’(현대문학, 1964년 2월), 전봉건의 ‘토대 없는 참여의 시’(세대, 1967년 8월), 김양수의 ‘참여문학의 자기미망’(현대문학, 1971년 5월) 같은 글이 그렇다. 주목할 것은 해방 후 김동리에 이어 ‘순수’론의 좌장 노릇을 해오던 조연현은 논쟁에 나서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이 주관하는 월간지 ‘현대문학’에 찬반양론을 공평하게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문단은 10여년간 한국문학사상 초유의 대규모적인 논쟁에 말려들게 되었는데, 이 가운데 깊은 인상을 남긴 두 사건을 간단히 짚어보자. 하나는 불문학자 김붕구를 발신자로 하여 많은 문인들이 참가한 앙가주망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1967년 말경부터 이듬해 3월까지 조선일보와 사상계 지면에서 전개된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의 논쟁이다. 먼저 전자를 살펴보자. 당시 경향신문 문화면(1968년 3월20일자)은 ‘문학의 사회참여’라는 표제 밑에 다음과 같이 문제의 발단과 경위를 소개하고 있다.
(1967년 10월12일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세미나에서) 김붕구씨는 주제발표를 통해 “작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뛰어들어 자기의 창조적 자아를 자승자박하기보다 ‘나’를 송두리째 작품 속에 투입시키는 성실성을 가져야 하며, 이론화된 앙가주망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로 귀착된다”고 주장했다. 선우휘씨가 이어 김씨의 주장에 찬의를 나타내면서 “문학은 문학 이외의 다른 무엇에 써먹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이호철씨는 선우휘씨와 달리 “세속의 현장논리와 ‘작가의 현장’을 뒤범벅으로 뒤섞지 말 것”과 “이론화된 앙가주망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데올로기로 귀착된다”는 김붕구씨 의견은 매카시즘의 우려를 느끼게 한다는 이의를 내놓았다.(후략)
염무웅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2016년 7월 11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12135005&code=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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