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인권교육, 쉬운 듯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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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02 16:50 조회31,0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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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교육 개념은 70년 전에 나왔지만, 알파고 시대를 맞은 21세기를 예견한 듯하다. 교사와 교육전문직을 상대로 미래사회 학생들에게 필요한 주요 능력을 물었더니 공감능력이 압도적 1위였고 도덕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그 뒤를 이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될수록 인권교육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인권보호 의무가 있는 기관, 특히 군, 경찰, 검찰, 국정원에 대한 인권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탈북자,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처럼 인권이 갈급하나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거나 처지가 안 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 현 법제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전수해야 한다.
오래전 일이다. 어느 기관에 인권교육을 갔는데 ‘인권의식 함양을 위한 정신교육’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 놀랐던 적이 있다. 인권을 정신교육으로 하다니.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학교나 대학에서 인권교육이 늘었고 학교 바깥의 교육도 활발해졌다. 인권단체, 시민단체, 교육단체, 지자체, 경찰, 복지기관, 기업 등에서 여러 형태로 인권교육을 하며, 계속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교육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관한 합의가 아직도 부족하다.
원래 ‘인권교육’은 ‘교육인권’과 짝을 이룬다. 교육인권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26조는 교육의 목적이 인권이라고 못박는다. “교육은 인격을 온전하게 발달시키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더욱 존중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선언의 전문에서는 사람들이 인권을 이해해야만 인권이 달성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인권교육이 곧 인권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즉, 교육 자체가 인권교육이 되어야 하고, 인권교육을 해야 인권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인권교육 개념은 70년 전에 나왔지만, 알파고 시대를 맞은 21세기를 예견한 듯하다. 문유석 판사에 따르면 미래교육의 핵심은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행동하도록 하는 고전적 시민교육에 있다. 교사와 교육전문직 2229명을 상대로 미래사회 학생들에게 필요한 주요 능력을 물어봤더니 공감 능력이 압도적 1위였고 도덕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인공지능 시대가 될수록 인권교육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인권교육의 첫걸음은 대상을 잘 가리는 데에 있다. 인권교육은 확정된 법규집 같은 게 아니다. 어린이와 대학생, 학생과 교사, 일반교사와 학교 관리자, 복지시설 이용자와 운영자, 일반시민과 공무원, 다수자와 소수자에 따라 내용과 접근이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선 ‘인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인권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학습자의 구분만큼이나 교육 목적도 다양하다. 제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목적은 인권을 하나의 주제로 다뤄 그것의 개념, 역사, 권리의 종류, 헌법과 국제기준, 주요 쟁점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컨대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는 주로 대학이나 전문 연수 과정에서 인권을 다루는 인지적 교육방식이다.
인권 침해의 해결책을 가르치는 도구적 교육방식도 있다. 법과 제도에 대한 지식과 그 활용법, 정책결정 과정, 의제화를 위한 주창 능력을 가르친다.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이나 약자 집단이 권리의 호신술을 익혀 유단자가 되어 직접 후배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이것을 당사자에 의한 인권교육 모델이라 한다.
편견과 차별적 태도를 바꾸고, 반인권적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입형 교육도 있다. 경찰이나 공무원들에게 실시하는 인권교육이 주로 이런 방식을 취한다. 흔히 태도와 행동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구성원들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공조직이 늘면서 양적으로 커지고 있는 분야다.
마지막으로 철학적이고 비판적인 접근도 있다. 인권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권리와 자유를 가로막는 장벽을 발견하며, 자신의 욕구를 규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고양하도록 이끄는 성찰적 참여형 교육방식이 그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민주 시민교육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시민교육,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인권을 학습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는 공동체라고 믿는다.
인권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나라로 필리핀이 꼽힌다. 시민들이 피플파워로 독재자 마르코스를 쫓아낸 후 1987년에 새로 만든 헌법 14조 3항에 인권교육이 명시됐다. “모든 교육기관은 헌법을 가르쳐야 하고… 인류애와 인권 존중을 함양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군과 경찰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하여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교육 담당자들은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공무원이나 여타 공조직에도 적용될 만한 교훈이다.
첫째, “구어체로 교육하라”. 일상용어를 쓰고 전문 법률용어를 되도록 피하라.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잘 살펴 설명하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국제인권법의 이러저러한 전문적 규정을 들이대면 하품 나는 먼 나라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둘째, “인권이 학습자 스스로의 것이 되게끔 하라.” 인권규범을 소개한 후 그것을 학습자의 상황에 맞춰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인권이 완전히 새롭고 골치 아픈 뭔가가 아니라 자기 직업윤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의지만 있으면 자신의 일상 업무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안내해야 한다.
셋째, “인권이 개인의 삶과 연결되도록 하라.” 당신들은 잠재적 인권 침해 집단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거부감과 방어심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권이 학습자 자신의 인간적 욕구와 인격에 도움이 되고, 가족과 자녀의 삶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인권을 실천하도록 교육받는 대상일수록 오히려 스스로 피해의식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우리 인권은 어떻게 됩니까”라고 되묻는 공무원, 사회복지사, 경찰을 만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것에 인간적인 이해를 표하는 것이 효과적 인권교육의 첫 단추가 된다. 교육자의 자세에서부터 인권의 정신이 드러나야 하는 법이다. 교육자와 학습자 사이에 신뢰의 창이 열리면 그 교육은 이미 성공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권교육은 사실과 지식 전달 이상의 어떤 교감을 필요로 한다.
넷째,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라.” 인권과 같이 고귀한 가치를 가르친다고 해서 참여자에게 당근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교육 불참에 대한 불이익보다, 교육 이수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편이 효과적이다. 직원들이 인권교육을 받은 후 자발적으로 감상문을 제출하고 조직의 장이 직접 상을 주면서 그런 글을 홍보한다면 인권교육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6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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