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핵심 쏙 빠진 '김영란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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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09 16:37 조회31,9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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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40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 공무원과 교원 등을 넘어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이 법의 제정과 시행을 반기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놓고 논쟁도 벌어진다. 10조원이 넘는 경제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 부패가 청산되면 장기적으로 경제도 좋아진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과 혼란은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다. 정부, 정치권, 언론에서 많은 얘기가 나오지만, 핵심을 건드리는 주장이나 논의는 거의 없다. ‘김영란법’의 근본 취지는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좋은 미래를 열어나가자는 것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논쟁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그 법이 기여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쏟아져나오는 주장과 우려는 대부분 자기중심성, 한 치 앞만 내다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이 법을 평가하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사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디지털화이다. 지금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들까지 연결되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어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이야기하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21세기의 세계는 지금까지와 달리 물품과 서비스나 전통적 자본의 교환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이 세계는 아이디어와 디지털 자본의 흐름이 지배하는 곳이다. 비약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런 세계로 진입하는 데 ‘김영란법’이 도움이 될 것인지가 논쟁의 핵심이 돼야 하는 것이다.
재작년에 나온 매킨지의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플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상품의 흐름은 선진국 최고에 속하지만,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중간 이하에 속한다. 인적인 흐름에서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독일이나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들 국가는 21세기를 충실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20세기형에 머물러 있지 21세기로 나아갈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법은 20세기 경제계획 시대에 필요했을 법이다. 계획의 시대에는 사람들을 훈련하고 규율해야만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규율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법규정이 분명하고 개인의 세세한 행동까지도 지침으로 규정해줘야 한다. 지금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법규정이 분명하게 정해졌고, 밥을 먹을 때와 선물을 줄 때 몇만원 이하로 먹거나 주어야 하고, 누구와 어떤 자리에서 먹거나 주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규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가 아주 많은 규율받을 대상들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있다. 일손이 모자라는 국가를 도와서 이들을 감시하는 일에 나서겠다고 준비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만나지도 먹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감시와 처벌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6년 8월 3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320430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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