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민주 사회의 보루, 대학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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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31 15:49 조회32,3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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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8월17일은 국공립대학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목숨을 던진 부산대 국문학과 고 고현철 교수의 1주기였다. 고인은 유서에서 두 가지 중요한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가 교묘하게 억압되고 있는데 대학과 사회가 모두 너무 무뎌져 있다는 비판, 그리고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는 지적이었다.
대학을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현실을 곱씹어볼수록 이 발언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문화를 누리며 성장해야 사회에 나가서도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교수는 대학에서 가장 큰 권위와 힘을 가진 만큼 대학의 민주주의에도 제일 무거운 책임을 진다. 또 학생, 비정규교수, 직원, 동문 등 다른 대학 구성원의 탄탄한 지지를 받아야 정치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맞서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주역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정권과 교육부의 압력에 대학이 쉽게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이화여대 농성에 대한 성급한 공권력 요청이 보여줬듯이 총장을 비롯해 대학운영을 독점한 교수들이 대학 구성원의 요구와 희망보다 자신의 실적과 이익을 앞세우는 비민주적 자세 때문이다.
이는 2011년 법인화된 서울대의 현실에서도 적나라하다.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고 대학평의원회가 의결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하되는 등, 대학운영권을 쥔 교수들과 평교수들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학내 민주주의는 형해화하고 있다.
제자리를 잃은 평교수진은 눈앞의 자기 일 외에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허점 때문에 서울대는 정권과 교육부의 입김에 한층 더 취약해져 법인화의 명분인 자율성 강화는 빈말이 되고 말았다. 서울대의 퇴행이 전국의 다른 대학에 악영향을 크게 끼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고대원총)가 발간한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시즌 1>은 대학 민주주의를 위한 필독서이다. 온라인에 연재한 총 11화의 웹툰으로 구성된 책은 학생 위에 군림하는 교수의 전횡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제10화 ‘같은 처지끼리’는 대학원생 선후배 간의 억압적 관계를 그리지만, 그것 역시 교수의 권위주의가 빚어낸 그늘이다. 결국 대학원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수의 비민주적 행태인 것이다.
책이 출간된 후에 온라인에 올라온 ‘시즌 2’의 첫 작품도 화제이다. 최근 대학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성균관대의 구상권 소송 사건을 두 회에 걸쳐 그려냈다. 2003년 성균관대의 지 모 교수가 제약회사의 의뢰로 시행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조작하여 민형사상의 사건으로 번졌다. 지 교수는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지도학생인 연구원들은 수사과정에서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성균관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낸 민사소송에 패소해 배상금을 물어낸 후 지 교수와 당시의 연구원 세 명에게 구상권 청구소송을 냈다. 1심 판결은 지 교수와 연구원들에게 26억원의 배상금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정작 지 교수는 개인회생절차 등으로 재산이 공식적으로 한 푼도 없고, 현재 가천대의 특임 부총장으로 베트남 캠퍼스 건립을 위해 현지에 머물고 있다.(후략)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6년 8월 18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8211000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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