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나쁜 사회와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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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11 15:59 조회32,4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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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한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웰다잉 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이 법은 말기에 이른 환자 본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사전에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둔 경우 담당의사의 확인과정을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환자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미성년자인 환자의 법정대리인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의사를 밝히거나,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를 하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결정하게 된다.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사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심지어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까지, 일단 병원에만 들어가면 마지막 순간까지 떠밀리듯 끝없는 처치를 받게 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라, 웰다잉 법안 통과에 대한 여론은 일단 우호적인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 본인을 포함한 여러 당사자들이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는 데 이견 없는 합의를 보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15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으면서 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법정 공방의 상징적 사례가 된 미국의 테리 시아보 사건 역시 회생 불가능성을 두고 법적 대리인인 남편과 친정 부모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경우였다. 또한 현재 본인이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한데, 임종기라는 급박한 순간에 가족이 합의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 웰다잉, 즉 말로는 존엄한 죽음이라고 하지만, 이를 허용하는 경우 가족과 사회로 하여금 회생 가능성이 없지 않은 환자에게조차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을 터주거나, 상속 문제를 위해 악용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테리 시아보 사건 때도 부유층의 경우에는 무의미하게 수명만 연장하는 치료에 반대하면서 인간다움 죽음을 옹호하는 의견이 많았던 반면, 경제적 취약 계층에서는 연명의료 중단의 확산이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들어 반대가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도 했다.(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문화인류학
(한국일보, 2016년 1월 10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f107a12fce4e4956b12253a3ad6c7a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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