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수] 변화, 그리고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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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29 16:23 조회29,8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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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제조한 ‘의자와 슬픔’, ‘가위, 바이올린, 자상함, 트랜지스터, 댐, 농담, 찻잔’ 등등의 물목으로 꽤나 풍요로운 ‘여기 지구’, 그러나 주로는 ‘전쟁, 전쟁, 전쟁’이고 잠시의 휴지기에 얼마 안 되는 ‘선함’을 동원해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구의 슬픈 시간을 아이러니한 어조로 개관한 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조금은 단호하게 말한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서재에서 시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가까이 와서 이것 좀 보라고./탁자는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서 있어./책상 위에는 본래 있던 그대로 종이가 놓여 있고,/반쯤 열린 창으로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어오지,/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혹시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틈바구니 따위는 말이야.” 시의 마지막이다. 컴퓨터는 쓰지 않았던 것일까. 시집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쓴 원고가 실려 있다. 생각해보면 시인이 보낸 한 세기 동안 지구는 얼마나 많이 흔들렸나. 말 그대로 전쟁, 전쟁의 연속이었다. 시인의 조국 폴란드는 아우슈비츠의 땅이었고, 또 한동안은 구소련의 위성국가여야 했다. 자유노조의 민주화 운동과 소비에트 블록의 해체까지 다시 한번 격동의 역사가 흘렀다. 노년의 시간이었을 테지만, 전자정보혁명이 열어놓은 새로운 세상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 하고 말할 때, 적어도 이 시의 진실과 기운 안에서라면 나는 충분히 설득되고 있었던 것 같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변화에 대한 환멸이나 거절로 읽는 것은 서툰 독법일 테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시인의 말대로 “여기서 지속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 아닌 ‘다른 곳’을 향한 인간 열망의 기차가 멈춘 적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시인이 그 열망을 모르지 않은 채로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변화라는 것에 대해 겸허해질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 변화라는 말은 우리 시대의 지상 명령이 되어 있다. 변화에 대한 홀림과 강박은 거의 우리의 존재 양식이 된 느낌이다. 시인은 말해준다.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 세상은 ‘휴지기’를 잊어버린 듯하다. (후략)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국일보, 2016년 3월 25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68a933c110ac431b935c17416c303f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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