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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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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29 16:27 조회29,6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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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월28일부터 세월호 2차 청문회가 열린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1차 청문회는 해경 간부들의 뻔뻔함을 확인하고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는 자리였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와 같은 말로 빠져나가려는 그들의 모습은 수사권이 없는 특별조사위원회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강제력의 뒷받침 없는 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사를 받는 사람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이 강력한 힘을 원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4·19혁명 직후,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도 불사했던 이들을 심판할 때도 그랬다. 민주주의와 생명을 유린한 이들에게 가벼운 형이 선고되자 제구실을 못하는 사법부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며 과단성이 없는 장면 정권을 비판했다. 그 결과 특별재판소가 설치되어 다시 심리가 진행되었지만 확정판결이 나기도 전에 발생한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기능이 정지되었으며, 그 기능은 군부가 새로 설치한 혁명재판소로 이관되었다. 혁명재판소의 심리는 빨랐고, 사형을 비롯한 중형이 많이 선고되었다. 군사쿠데타가 나름의 호응을 얻은 데는 법과 절차를 지키는 데서 오는 답답함을 해소해준 이러한 힘에 대한 지지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힘이 결국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딜레마와 부딪치게 된다. 이 사회의 폐해를 척결하기 위해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더 강한 권력과 더 철저한 감시를 요구하게 되는 딜레마다. 그리고 그러한 감시를 의식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최소한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관여를 피하려고 한다. 세월호 1차 청문회 때도 “선장이 판단할 일이라 생각했다”, “총지휘는 본청에서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와 같은 말들이 나왔지만, 이런 태도를 표현하기에 무책임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전에 세월호 재판을 기록한 <세월호를 기록하다>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출동한 해경 123정의 정장이 세월호와의 교신을 한 번만 시도하고서는 다시 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나는 해야 할 일은 했고 받지 않은 세월호가 문제라는 냉혹한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최소한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책임’을 다할 것만을 생각한다. 총체로서의 무책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이와 같은 ‘책임의식’이다.


이것은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의 ‘옥바라지골목’ 재개발과 관련해 주민들과 더불어 종로구청을 방문했을 때 목격하게 된 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확고한 태도였다. 작은 책임들로 쪼개져 있는 공무원들의 세계에서는 재개발 문제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와 삶들이 얽힌 총체적인 문제일수록 대응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급 담당자들한테 말하면 하나같이 내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상급자한테 가면 왜 나한테 말하느냐고 한다. 이렇게 책임자가 실종되는 구조 속에서 오늘도 세월호는 우리를 태우고 출항한다.(후략)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16년 3월 27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70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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