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고궁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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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2-21 16:20 조회34,3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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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古宮)`이란 사물이 있다. 왕과 왕의 가솔들이 살던 궁(宮) 말이다. 이 `사물`은 특정한 위치와 넓은 구역을 점유하고 있음으로써 확실한 공간성을 확보하고 있는 동시에 `전통`과 `역사`의 유물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매우 강력한 시간성을 환기한다.
`옛날`을 뜻하는 `고(古)` 자는 고궁을 구성하는 외관과 적절히 호응한다. 고색창연한 기와와 단청과 단아한 뜰과 기품 있는 공간 배치는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며, 그 공간을 거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고궁이 불러일으키는 전통과 역사에 대한 향수는 역설적으로 궁이 갖는 진정한 시간성을 휘발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 하나의 사물처럼 늘 그 자리에 수백 년 동안 존재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궁`은 `고궁`이 되어 그것이 지닌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탈색시킨다. 역사의 외관을 두르고 있지만, 이제는 `옛것`이 되어버린 이 사물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핼릿 카의 유명한 명제 대신 역사는 단지 `과거`이며, 전통은 옛것의 반추나 복원이라는 생각을 강요하게 하는 면이 있다. 시민 일반에게 고궁이 예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는 공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 궁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사물이었다. 망한 나라의 궁을 허물고, 굳이 그 자리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총독부를 세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 서정주처럼 경복궁을 보며 "옥같이 고우신 이/그 다락에 하늘 모아/사시라 함이렷다"(`광화문`)며 역사를 낭만화할 수도 있겠지만,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봉황수`)는 조지훈의 탄식처럼, 늘 사대주의로 일관하다가 망한 나라의 민족적 비애를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신문, 2015년 12월 18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119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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