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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옥바라지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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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09 15:06 조회32,6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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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무악동이라고 하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 맞은편에 있는 ‘옥바라지골목’이라고 하면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원래 사람이 살지도 않았던 지역이지만, 1908년에 감옥이 들어서고 옥바라지를 하러 모여든 이들을 위해 여관과 식당 등이 생기면서 형성된 것이 옥바라지골목이다. 그런 점에서 이 동네는 서대문형무소의 또 하나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옥바라지가 수감된 이들을 이 세상과 이어주면서 옥살이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는, 탄압을 상징하는 서대문형무소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감옥 기능의 핵심이 수감자를 고립시키는 데 있다면, 옥바라지는 감옥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다.


내일 3·1절에는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겠지만, 옥바라지골목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견학할 때도 독립문과 형무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옥바라지와 분리된 형무소에서 우리는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순국선열이라는 말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은 고문을 비롯한 가혹한 탄압과 비장한 죽음이지, 그의 구체적인 삶은 아니다. 목숨을 바친 행위 자체가 기려질 때, 그의 삶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삶을 구성했던 다양한 관계들은 가려진다. 독립운동은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영웅적인 소수에 의한 특별한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옥바라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의 ‘영웅적인 투쟁’이 사실은 수많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해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면회를 가고 옷가지나 사식을 넣어주는 일 자체는 사소한 행위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따뜻하게 입는다는 사소한 일상을 지속시키는 것이야말로 옥중투쟁의 원동력이 된다. 그것을 알기에 감옥을 활용하는 이들은 면회를 자의적으로 제한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수감자를 고립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또한 옥중에서 싸운 이들을 ‘고독한 영웅’처럼 기억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억 자체가 감옥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억은 구체적인 장치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기념일이나 기념관 같은 것도 기억을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런 의미에서 옥바라지골목의 존재는, 좁은 골목에 있는 자그마한 여관이나 여인숙의 모습은, 옥바라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서대문형무소의 기억을 우리의 일상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옥바라지골목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역사적 기억이 깃든 골목과 집들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으려는 것이다. 이미 예비철거도 진행되어 대부분 주민들은 이 동네를 떠났다. 하지만 아직 소수의 주민들이 남아서 이런 방식의 재개발에 반대하며 역사적인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도시재생 사업의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예전 방식의 재개발은 하지 않겠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과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무수한 옥바라지를 가까이서 지켜보았을 그가 옥바라지골목의 가치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재개발은 진행되고 있다.(후략)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16년 2월 28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7324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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