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울컥’이 인간다움의 본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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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29 16:25 조회29,8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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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세돌을 응원하는 저를 보며, h형을 생각했습니다. 울컥했기 때문입니다. h형은 대의를 위한 ‘숭고한 삽질’을 소명으로 생각하면서도 울컥의 대명사와 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울컥이 감동보다는 분노에 더 많이 사용된다는 본래적 의미에도 충실한 분이었습니다. 몸과 관련되어 울컥이 사용될 때는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는 더 강한 부정적 의미가 담깁니다. 저의 울컥은 종적 연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때 사용한 돌팔매처럼, 몸의 크기보다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가가 승부를 가린다고 할 때, 이세돌은 몸의 연장을 가지지 못한 채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알파고란 몸과 마음의 연장을 가지고 있는 구글이란 집합적 행위주체와 연장을 결여한 단독자 이세돌의 싸움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h형은 몸의 연장은 아니지만 연장된 마음의 네트워크입니다. 그 네트워크의 한 노드가 선물한 <기계와의 경쟁: 진화하는 기술, 사라지는 일자리, 인간의 미래는>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큰 제목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알파고를 죽은 노동의 응고체가 아니라 산 노동의 연장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알파고는 전통적 의미의 기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책의 부제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경제적 효과를 직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파괴운동과 같은 비관주의는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이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낙관주의 사이쯤에 그 책은 위치하고 있습니다.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 가운데 하나가 1930년대 경제학자 케인스가 언급한 노동절약이 야기하는 “기술적 실업”입니다.
1958년 미국경제분석국이 정보기술을 비즈니스 투자분야에 포함시킨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디지털 혁신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중산층 가구의 소득침체의 장기 지속은 물론 경제성장과 고용증가와 일자리 창출의 강력한 상관관계가 약화됐다고 합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했지만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인간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고숙련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 수요는 증가했지만 저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거나 사라졌다고 합니다. 극소수의 슈퍼스타가 증가한 부를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도 급증했다고 합니다. 대침체 이후 증가한 국내총생산의 대부분을, 노동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지출하고자 하는 자본이 가져갔다는 증거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잉 기술결정론의 전형으로 읽으면서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결과가 준 울컥이, 경기순환의 문제나 총수요의 부족으로 현재의 위기 원인을 설명하는 다른 글들보다, <기계와의 전쟁>에 몰입하게 합니다.
미국에서조차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물관에나 있을 화석의 단어인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언급하는 후보의 선전을 보며 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h형의 안위를 보듬으려 과거형으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만, 사회주의자였던 h형이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물론 파시즘에 가까운 정치체제도 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위기에 대한 분노의 울컥이 큼을 그러나 위기돌파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산과 울컥하고자 하는 감동의 방향은 극단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장된 몸과 마음인 디지털 기술을 누가 왜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기술혁신과 기술의 선택과 수용은 정치과정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의 심화를 생산하는 디지털 기술을 재배치할 수 있는 주체와 제도를 만드는 정치적, 사회적 혁신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혁신의 문제제기는 고용 없는 성장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분노의 울컥으로 촉발되고 있습니다.(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경향신문, 2016년 3월 23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7204423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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