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기업이 사회에 책임지도록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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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5-09 16:02 조회29,7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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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유난히도 잦았던 지난 며칠이었다.
거기에 아름다운 기업을 표방하면서 기부에 앞장서고 여성가장을 지원하거나 학술연구나 문화행사를 후원해온 기업마저 창업주의 가족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조세를 회피하고 자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난 것도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 와중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어버이연합의 돈줄이 전경련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개별 대기업들까지도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보수단체들을 지원해 온 사실까지 접하고 보니,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과연 물을 수 있기나 한 것인지 회의가 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과제로는 현재 1,500명이 넘는 피해자가 접수되고 그 중 사망자만도 239명에 달한다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있다. 안전하며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를 달고 제품으로 공식 출시되어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제품이 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그 중 어린이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영구적인 손상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법적 책임을 묻는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분노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인 옥시는 최초의 사망피해자 확인 후 벌써 5년 동안 피해를 보상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안전하다고 우기면서 합의를 시도하였고, 대학에 의뢰한 독성실험에서는 조작을 요청했다. 심지어 기업조직은 그대로 두고서 회사의 명칭과 형태를 바꾸면서까지, 법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준비를 착실하게 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법적 책임회피를 치밀하게 진행해올 수 있었던 데는 이를 충실하게 조력해 온 법률기업, 즉 로펌의 역할도 컸다. 옥시 측 대변자인 이름난 로펌은 역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매우 뚜렷하다고 결론이 난 상황에서조차 역학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필시 기업 명칭과 형태를 바꾸는 과정에서도 법률자문은 필수였을 것이다. 법률기업은 종종 자신의 이익만을 냉혹하게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이제껏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아온 데는 법을 진실을 밝히고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 믿는 이데올로기적 후광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점점 더 많은 사회적 쟁점들이 법정에서 결정되는 사회에서 민주적인 원칙들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법률기업의 명백하고 노골적인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한국일보, 2016년 4월 28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73c0670deb264f6aa439b04a0f24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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