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수]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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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24 17:53 조회29,9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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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것’을 일컫는데,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에서 연유했다.
그런데 작가는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는가. 남의 불행을 내려다보며 말이다. 한 가지 답은 플로베르가 직접 우리에게 주었다.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엠마의 저 환상병(幻想病)은 바로 플로베르 자신이 혹독하게 앓고 있던 낭만적 질병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초라한 현실을 외면하고픈 우리의 자기기만 안에 엠마의 이야기가 언제든 끼어들 수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얼마간 엠마 보바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작가들에게 인간 불행의 관찰자 자리를 선뜻 내어주고 그것을 기리기도 하는 이유를 이런 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싶다. 그렇다는 것은 문학이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타인의 이야기를 전개할 권리가 그리 허투루 얻어질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남의 불행을 읽을 때 우리 역시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질문을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여선의 단편 ‘이모’(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창비)에 나오는 50대 후반 윤경호라는 여성의 인생은 쓰라려서 옮기기가 저어될 정도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덫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고약한 운명의 여신에게 저당 잡힌다. 얼마 안 되는 사랑의 기회조차 그녀를 이상한 방식으로 모욕하며 비껴간다. 그러나 그녀는 나름대로 몹쓸 인생에 대한 반격을 준비해왔는데,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마련한 뒤 가족과의 절연을 선언한다. 그녀 나이 55세 때이다. 그리고 2년 뒤 병에 걸린 몸으로 나타나고 곧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그 2년 동안 그녀가 누린 자유조차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한 달 35만원으로 생활하며 매일 도서관에서 책 읽기. 하루 네 대의 담배, 일주일에 한 번의 음주. (후략)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국일보, 2016년 6월 16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e17861b599b4493db469ce3e6d6dbc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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