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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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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9-07 01:09 조회35,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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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수준과 소비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삶이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하다 느끼는 데 주목하여, 이 세 가지 문제를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총체적 난국의 표현이자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숙제로 지적한 분은 돌아가신 경제학자 김기원 선생님이셨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오늘날 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 세 가지 정서는 이제까지 한국 사회의 노동과 분배 문제의 맥락에서 논의돼 왔으나, 조금 더 확장하여 여성혐오라는 덫에 걸려 평등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 시대 한국의 남녀 관계를 생각하는데도 활용해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여성혐오와 혐오에 분노가 맞서는 현상의 이면에는 남자들은 남자로 사는 게, 여자들은 여자로 사는 것이 각기 더 고단하고, 더 억울하고, 더 불안하다는 엇갈린 인식이 있으니 말이다.

먼저 남성 쪽 이야기를 들어보자. 얼마 전 MBC ‘PD수첩’은 소위 여성혐오 현상을 다루면서 과거 누렸던 가부장적 특권을 거의 대부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무와 데이트나 결혼 비용 면에서 여전히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는 한국 남성들의 박탈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방송에 나온 남성들은 역차별 당하는 남자로서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고 억울하다면서 ‘양성평등’을 요구했다. 사실 우리 사회가 남자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야기는 인터넷 여성혐오 사이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현행 교육 체제가 여학생들에게만 유리하며 남자들이 진학부터 취업까지 계속 불이익을 당한다는 주장은 소위 아들 가진 엄마들의 흔한 화제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 젊은 남자들의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은 듯도 하다.


그러나 남성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남자들 살기 어렵다는 게 여자들 살기 좋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나이를 떠나 한국의 여성들은 그야말로 집 안팎에서 갖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결혼시장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조차 외모와 젊음으로 여성의 가치를 평가한다. 무엇보다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끝없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과 평가는 여성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여성들은 실질적인 차별이 감소되기는커녕 이중의 부담 속에서 사는 것이 억울하고 삶은 불안하다고 느낀다.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어떤 특질을 일반화하여 여성 전체를 공격하고 비하하는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때문에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여성혐오는 여전히 여성 전체가 약자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어쨌든 더 이상 약자가 아닌 방향으로 변화 중인 현실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애초에 여성을 평등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생겨나기 어려운 현상이다.(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한국일보, 2015년 8월 30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eb0791a74e544417bac9bfa161b45e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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