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자학사관' 독일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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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1-03 20:16 조회32,68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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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의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 웹사이트에는 그가 남긴 세 가지 업적이 소개돼 있다. 그중 하나가 자연보호운동이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산림녹화운동을 시작했고, 집권 중반에는 그린벨트를 만들었고, 말기에는 자연보호헌장을 제정해 “국민 모두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 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산림녹화운동을 펼친 계기는 1964년의 독일 방문이었다고 한다. 이때 독일의 숲에 감동과 충격을 받은 그가 한국의 민둥산을 푸르게 만들기 전에는 다시 독일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다고 하니, 산림녹화에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검푸른 숲의 나라, 모범적인 자연보호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대통령, 자기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부러워하고 시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일에서 자연보호법을 제정해서 본격적으로 자연보호를 시작하게 된 때는 히틀러 집권기부터이다. 다양한 이해의 충돌로 바이마르 공화국 때 실패한 것을 히틀러와 나치들이 단번에 정리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 법의 핵심내용 중 하나는 전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선다는 것이다.
독일의 자연보호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히틀러 때 제정된 법의 모태가 청산된 것은 아니다. 과거청산에 열심인 독일에서도 이 법에 대해서는 2002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당시 환경부 장관이 역사학자들에게 이 법의 제정 시 나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연구 하도록 부탁했고, 결과는 심포지엄을 거쳐 책자로 출판됐다. 몇몇 학자들은 둘이 큰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했고, 다른 몇몇은 아직까지도 그 법 제정 시의 이데올로기가 자연보호와 조경계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나 그린벨트는 ‘좌우’에서 모두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파들은 나무로 가득한 산들이 모두 박정희 덕이라며 칭송하기 바쁘고, 환경단체들은 그린벨트가 풀려나가고 산림이 훼손되는 것을 가슴아파한다. 그것이 히틀러의 자연보호법 제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좌파’에서도 개의치 않는다.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독일의 주무부처 장관이 그 법의 역사적 문제를 파고든 이유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 학교의 역사책이 ‘자학사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독일의 그런 작업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법이 독일을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자연보호의 선진국으로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면, 법 제정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공’한 현재를 가능하게 해준 역사는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들 눈에는 독일정부와 역사가들은 모두 독일 젊은이들을 절망시키고 자살로 내모는 짓을 하는 ‘좌파’로 보일 것이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5년 10월 28일)
기사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2821154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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