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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불가역’을 뒤집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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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2-01 23:04 조회33,1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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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역 반응은 정반응과 역반응이 평형상태를 이루지 않고 한쪽으로만 반응이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이 반응에서 한번 생성된 물질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질 수 없다. 물리학에서는 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대부분의 과정이 비가역적이다. 여기서도 변화된 상태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과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비(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북한 핵개발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종종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위안부 합의문에까지 등장했다. 북한 핵개발 협상에서 불가역적이란 말은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개발 시설을 파괴해서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에서 불가역적이란 말은 의미가 모호하다. 합의문에는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최종적 해결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데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들어갈 이유가 없고, 따라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한국정부가 아니라 일본정부의 요구로 들어갔을 것이다. 일본에서 최종이라는 말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다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떠들지 말라는 의미로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넣자고 했을 것 같다. 그러니 일본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하지만,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그를 비롯한 일본의 우파들이 그럴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준다. 아베가 일본 의회에서 자기 입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기를 거부한 것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좀 더 뜯어보면 사용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손상과 고통을 당한 분들에 대해 2차 가해를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정부에서는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넣자는 요구를 거부했어야 한다. 정부 담당자들이 당시에 고통받은 분들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말을 넣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정부가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넣자고 하지는 않았을지 의심이 든다. 사실 대통령과 정부는 가역적 과정보다 불가역적인 과정을 선호한다. 이미 많은 통치의 과정이 알게 모르게 불가역적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가역적 과정이나 반응은 양방향으로 열려있다. 양방향으로의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나고, 균형이나 평형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불가역적 과정이나 화학 반응은 한쪽으로만 움직인다. 균형과 평형이 없다.(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6년 1월 20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0203735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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