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삼성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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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2-21 16:11 조회33,6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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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보내며 마음이 스산하다. 이 땅에서 한해가 정말 힘들었던 이들을 손꼽아 세기 어렵다. 남북의 이산가족,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일자리 없는 청년, 메르스 피해자,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예술가와 시민, 세월호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 생존한 학생과 승객, 심신의 상처가 깊은 민간잠수사들…. 이들 중에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10월부터 농성 중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의 희생을 상징하는 중대사이며,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출간된 삼성전자 40년사에 한 이사가 중국 공장을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그는 이 공장의 높은 불량률을 고민하며 추석 연휴에 텅 빈 공장을 돌아보다가 더러운 화장실에 놀라 혼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에 나선다. 나중에 노동자들이 이 소식에 감화되어 불량률이 80% 이상 줄었다고 한다. 세계적 기업의 공식 역사에 담긴 미담치고는 인용하기가 민망하다.
삼성전자의 눈부신 성공담을 다룬 책들이 노동자의 기여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탁월한 비전과 결단, 그들을 뒷받침한 임원과 기술진의 헌신적 노력을 자랑하는 무용담만 화려하다. 우수하고 성실한 고교 졸업생들이 입사하여 자부심과 희생정신으로 땀 흘려 이룩한 공헌은 자취도 찾기 힘들다.
삼성전자의 역사에 밝은 분에게 들었다. 삼성전자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다. 삼사십년 전 미국과 일본이 선도하던 반도체 분야는 우리가 따라갈 엄두도 내기 어려웠는데, 미래를 내다본 삼성 수뇌부는 이 유망한 산업을 포기할 수 없어 절치부심하며 뛰어들 방안을 찾았다. 미국을 능가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핵심 인력이 노쇠 기미를 보이는 데 비해 우리는 훨씬 젊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정확히 판단했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노동자의 질이었다. 기술력을 포함한 모든 여건이 뒤졌음에도 우리 노동자가 미국이나 일본 노동자보다 뛰어나고 적극적이어서 현장에서 불량 등의 문제가 생기면 수동적 대처가 아닌 창의적 해결책을 내놓곤 했다. 따라서 저임금과 높은 생산성이 가져다준 원가 경쟁력으로 투자 초기에 다년간 겪었던 엄청난 적자를 상쇄했다는 것이다.
이 평가의 타당성을 문외한인 내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심도 있는 취재를 통해 출간된 김성희의 <먼지없는 방>, 김수박의 <사람 냄새>를 읽어보라. 회사가 이윤 추구에만 바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외면했지만, 그들이 인체에 유해한 각종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했는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악성 직업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이는 반올림이 받은 제보에 따를 때 삼성 계열사만 300명(사망 100여명 포함)에 가깝다.
2007년부터 터져 나온 문제를 덮으려고만 들던 삼성은 작년 12월에 제3의 기구인 ‘조정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반년 만인 지난 7월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자 삼성은 1000억원의 기금을 약속하며 권고안을 따르는 듯했지만, 곧 ‘보상위원회’를 통한 해결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문제의 당사자인 삼성이 주도하여 피해자를 심사하고 보상액을 결정하는 보상위원회 방식은 반올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후략)
김명환 서울대 교수, 영문학
(경향신문, 2015년 12월 17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17205852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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