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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그들에게 북한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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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5-04 11:50 조회29,6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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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중순 세 명의 영국인이 평양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중국의 베이징에서 출발해 약 24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기차여행은 풍경을 읽게 한다. 그들은 창밖에 펼쳐진 중국의 시장경제와 손으로 일하는 북한의 시골을 보았다. 풍경은 주체의 내면의 발견물이다. 그들이 탄 기차가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에 도착해 두 시간을 정차했다. 보안원은 화물차에 실린 백색 가전제품, 평면 텔레비전, 잡지, 바나나박스 등을 검색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 노트북컴퓨터, 휴대전화의 반입도 허용됐다. 그들은 신의주부터 평양까지의 기차에서만 안내원 없는 여행을 했다.

들은 ‘가장 고립되어 있는 국가’ 북한에서 사진과 글쓰기를 매개로 주민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하는 워크숍을 열고자 했던 영국문화원 일행이었다. 그들은 미얀마에서 비슷한 일을 한 바 있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에서 영어교사 양성을 지원했던 영국문화원은 새로운 문화협력의 기회로 그들의 방북을 생각했다. 그들의 문화외교는 북한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들은 왜 이 일을 하려는 것일까.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과 이 협력을 사전에 논의할 때,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시작이 반이다” 등의 속담을 인용하며 그들을 도우려 했다고 한다.

준비과정에서 그들은 평양의 어떤 기관과 함께할 것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조선사진가동맹’이 첫 후보였다. 그러나 최종 순간 북한은 ‘대외문화연락위원회’를 내세웠다. 1950년대 중반 만들어진 이 위원회는 북한판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기구다. 그러나 영국문화원의 의도는 무산됐다. 대신 그들의 문화외교는 2014년 출간된 <38선 이북(Above the Line)>이란 사진첩으로 남았다. 그들은 평양, 원산, 남포, 사리원 등을 여행하며 북한주민의 일상 시간을 정지된 공간에 담고, 쓰고자 했다. 그들은 ‘반인반신’(半人半神)의 거처이자 특권의 도시라 생각했던 평양을 벗어나야 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가져야 하는’ 그들의 내면이 사진에 어떻게 투사되었는지, 이 사진첩과 더불어 2015년 4월 홍콩에서 열린 사진전을 접하며, 질문을 했다.

책의 표지는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에 등장하는 군복을 입고 칼을 든 여성무용수다. 그럼에도 당의 교시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주민을 만나려 했던 그들의 의지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동상이 서 있는 만수대에서 절을 하는 주민들, 지하철에서 허공을 응시하는 세 명의 승객과 무언가를 읽고 있는 한 사람,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여성과 전통복장을 하지 않은 남성들이 함께 춤추는 장면, 대동강변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노인들, 김책공대 도서관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 머리모양이 번호로 매겨져 있는 미용실과 이발소의 남녀들, 평양의 돌고래 수족관, 쪼그려 앉아 휴대전화를 보는 여성, 원산의 해수욕장, 사리원 미곡 협동농장의 농민들, 손주들 공부를 도와주는 할아버지, 6시30분에 일어나 9시30분에 잠자고 일을 하며 ‘위대성교양’과 ‘컴퓨터 학습시간’과 ‘보도 및 문화생활’을 해야 하는 청년 협동농장의 일과표 등이 사진작가 단지거(Nick Danziger)의 시선에 잡힌 풍경들이다.
(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경향신문, 2015년 5월 3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03204638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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