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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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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7-23 22:03 조회35,5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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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원칙은 인권위 구성에서 다원성을 특히 강조한다.인권엔지오, 노동조합, 인권을 염려하는 사회·직능단체, 철학과 종교의 흐름, 대학 및 전문가 등 제 세력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못박는다.우리는 어떤가.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11명 중 8명이 법률가·법학자다.


국가인권위는 고관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든 조직이 아니다.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피와 희생으로 일궈낸 숙연한 결실이다.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책상 앞에 적어 놓고 매일 다짐해야 한다.

차기 국가인권위원장이 발표되었다. 시민사회에서 다음 위원장으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뽑으면 좋을지 논의중인데 대통령이 선출지명권을 휘둘러 위원장을 임명해버린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인권 공동체와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 인권위원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자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세계 약 120여개 국가에서 운용하고 있는 제도다. 명칭도 다양하다.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쓰지만 다른 호칭도 흔하다. 역할도 나라마다 다르다. 법에 규정된 인권 사항의 침해 여부를 판정하는 역할, 행정부에 의한 권리침해 감시와 조사, 인권정책 개발, 국제법의 국내 적용, 인권교육, 대중계몽 등 여러 가지다.


유엔이 창설된 후 경제사회이사회는 1946년 각국에 인권 자료센터나 위원회를 만들 방안을 검토했다.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197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침 초안을 마련해 각국 정부에 회람시켰다. 드디어 1991년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 워크숍이 열렸고, 여기에서 합의된 내용을 파리원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93년 유엔총회가 파리원칙을 결의안으로 채택함으로써 이 원칙이 국가인권위원회 제도에 관한 유엔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파리원칙은 전세계 국가인권기구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간주된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는 국가인권기구가 인권을 증진·보호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국가인권기구는 유엔 차원의 인권위원회를 각국에 설립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비유하자면 유엔의 인권 손오공을 세계 각국의 손오공으로 퍼뜨린 것이다. 따라서 국가인권기구의 ‘국가’(National)란, 국가(The State)라는 의미보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보편적 인권기구, 즉 ‘각국별 국민인권기구’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이 드는 ‘국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바로 이 지점에 국가인권기구의 모순과 긴장이 있다.


파리원칙에 따르면 국가인권기구는 국가조직의 일부로서 국가 예산과 행정체계에 속하면서도 독립성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국가, 시민사회,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가와 시민사회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하도록 기대된다. 솔직히 이런 원칙은 이해하기 어렵고, 실행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인권위를 민간 독립법인으로 만들자는 안이 나왔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법무부의 감독을 받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현재의 형태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법무부의 통제에서 벗어났을진 몰라도 청와대의 입김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더 높은 차원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원론적 질문을 던져보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민들 인권 향상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인권위가 우리나라 인권 향상에 가장 큰 역할을 해주면 좋겠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설립준비기획단이라는 기구의 말석에 참여했던 인연도 있어서 인권위에 개인적으로 애정이 적지 않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직원들에 대해 좋은 인상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잠시 악마의 변호인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설령 인권에 우호적인 정부가 있다 하더라도 국가인권위가 객관적으로 인권 향상에 어느 정도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한다. 최선의 상황에서도 10% 정도 되면 다행이다. 야박한 평가가 아니다. 지난 삼십년간 세계 학계에서 인권 향상을 위한 근본조건에 관한 실증적 연구가 많이 축적되어 왔다. 이런 연구들에 따르면 평화로운 국제질서와 같은 구조적 조건이 인권에 극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국내 차원에서는 민주주의의 질과 수준, 헌정주의, 법의 지배, 공정하고 독립된 사법부, 민주주의 규범을 내면화한 시민들, 불평등이 적은 경제발전과 광범위한 복지 등이 인권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 조건들이다. 여기에 더해 인권에 적극적인 정부나 지자체의 의지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15년 7월 21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11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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