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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비자(visa)-'인간의 권리' 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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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9-22 22:05 조회35,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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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소포클레스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정치적 난민`에 관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요즘에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많다.

드라마의 도입부는 인상적이다. 테바이에서 추방되어 노숙자가 된 채 세상을 떠도는 오이디푸스는 다른 도시(국가) 아테나이 국경에서 딸에게 이렇게 푸념한다. "우리는 대체 어떤 곳에, 어떤 사람들의 도시에 온 것이냐? 오늘은 누가 떠돌아다니는 오이디푸스를 보잘것없는 동냥으로 맞아줄 것이냐?" 그러나 기대 섞인 푸념에도 불구하고 국경에서 만난 첫 번째 아테나이 시민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완강한 어조로 말한다. "더 물어보기 전에 이 자리를 뜨시오. 그대는 밟아서는 안 되는 곳에 와 있소." 아테나이 시민은 `당신은 어디(어떤 나라) 소속인가`를 물은 후, 오이디푸스가 `이방인`으로 확인되자 그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떤 `자격`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추방을 명령할 수 있는가. 거꾸로 말해 노쇠한 오이디푸스는 어떤 이유로 `신성한 땅`을 훼손하는 이방인이 되었나. 이 드라마가 두 도시국가 사이 `국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여기에서 신성한 땅에 발 딛고 살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정상적 인간`과 추방되어 마땅한 `오염된 인간`의 분류는 자국민인가 외국인(이방인)인가, 하는 정치공동체의 소속만으로 갈린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국민적` 정체성이, 순결한 자와 오염된 자라는 `인간`의 총체적 정체성을 규정한다.

`비자(visa)`는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사물이다. 비자를 지닌 외국인은 오이디푸스처럼 추방되지 않고 다른 나라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이라는 미심쩍은 선입견이 이 사물로 불식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괴물`은 아니므로(아닌 듯하다?), 국경선을 통과할 수 있는 `인간`의 최소 기준에 턱걸이했을 뿐이다. 작은 노트에 찍힌 도장 하나가 그 턱걸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 턱걸이가 생사의 기로라는 사실을 지금 유럽 난민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9월 18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90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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