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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국정교과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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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0-21 22:19 조회32,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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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이 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가장 큰 명분은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감을 키울 수 있는 역사교과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에 충실하게 만들겠습니다.”


최근 교육부가 주요일간지 1면 하단에 실은 광고의 내용이다. 여당 대표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도입하는 문제를 두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꼭 이겨야 할 싸움이라면서 ‘역사전쟁’까지 선포했다. 이제까지도 엄연히 교육부가 정한 검정 절차를 거쳐 사용해 왔던 기존의 역사교과서들은 졸지에 편향되고 왜곡된 사실을 담고 있는 그릇된 교과서가 되어 버렸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올바른 역사교육을 하겠다는 기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은커녕 애초에 방향부터 잘못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국가가 정한 하나의 역사 해석만을 올바른 역사로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더구나 이를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한 바 있다. 배움의 당사자인 고등학생들부터, 대학생들, 그리고 집필을 맡아야 할 역사학자들까지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근래에 없던 적극적인 거부와 저항을 표출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전쟁이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비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하지만 역사 국정교과서가 성공할 수 없는 더 큰 이유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추진한다는 세력들이 애초에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역사를 왜 배우는지에 대해 무지한 것은 물론,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결코 교과서의 내용만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학재단들이 학교 설립 이념을 가르치고 특정 종교의 교리를 교육하기도 하지만, 운영상의 비리를 목격하고 종교 교육을 강요 받는 경우 오히려 반감만 길러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정권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내용들만이 올바른 역사라며 교과서에 담아 가르쳐도, 학생들은 시험 치고 나면 상당 부분을 잊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특정한 생각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와 독자적인 판단을 용납하지 않는 지성의 억압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작태가 자랑스럽지 않은데,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담은들 갑자기 이 나라가 자랑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대중들이 역사를 접하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개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세인 대명천지에 국정교과서 하나만이 올바른 역사서술이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뜻대로 먹혀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 국정교과서 논란을 계기로 역사교육에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지금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근본부터 생각해 볼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처럼의 논의를 국정교과서냐 검인정교과서냐, 아니면 좌편향교과서냐 친일교과서냐 같은 틀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로 민주사회에는 다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솔직히 기존의 교과서들이라고 해서 청소년의 관점, 여성의 관점, 노동자의 관점, 소수자의 관점 등 다양한 시각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는 의문이기도 하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한국일보, 2015년 10월 18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c3898d29c8604c53ba87bdbb12e6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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