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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무대조명 - 생명을 품고 있는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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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1-03 20:28 조회32,7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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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빛이 있었다.` 천지창조의 순간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이미지를 성경은 이런 식으로 전하고 있다. 모든 것은 빛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빛은 생명을 품고 있다고 말이다.

언어로는 존재하지만 상상할 수도, 묘사조차도 불가능한 `태초(太初)`의 시간이란 어떤 것일까. `빛은 곧 생명이요, (생명의) 시작은 곧 빛과 함께`라는 성경의 사고방식은 이 불가능한 상상에 유용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무한한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유일한 생각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오래된 사유를 담은 `장자`의 `응제왕` 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해의 임금과 북해의 임금이 중앙의 임금이 거느리는 영토에서 만났는데, 그 임금의 이름은 `혼돈(混沌)`이다. 남해의 임금과 북해의 임금은 혼돈이 자기들을 잘 대접해주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 데 필요하다고 하는 `일곱 개의 구멍`을 날마다 혼돈에게 뚫어준다.

성경이 천지창조의 시간을 7일 단위로 사고한 것처럼, 동양의 이 고전도 7일을 기준으로 우화적인 형이상학을 풀어놓는다. 여기에서 혼돈에게 차례로 선물로 준 일곱 개의 구멍은 `숨구멍`으로서 `질서`에 대한 비유이며, `생명(의 논리)`에 대한 일반적 사고방식을 비유하고 있다.

성경에 대입하자면 숨구멍은 `태초의 빛`과 유사한 어떤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성경의 우주와는 달리, `장자`에서 7일째 `혼돈`은 죽어버린다. 숨구멍인 줄 알았더니, 그 구멍은 `생명`이 아니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에서 분명한 것은 `장자`에서 `혼돈`은 소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 불확실한 것, 훤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그것은 `죽음`이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보존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생명의 원형이라는 사유가 여기에는 엿보인다. 이미지로 이 생각을 표현한다면 태초에 빛이 있었던 게 아니라, 태초에 어둠(혼돈)이 있었으며, 어둠이 곧 생명의 근원이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신문, 2015년 10월 30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1037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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