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방제복 - 외계 점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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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6-05 19:29 조회31,2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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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옷에는 단추 틈새든, 바지와 웃옷 사이든, 웃옷이 끝나는 목 솔기 부분이든 혹은 바짓단이 끝나는 발목 부분이든 살과 옷 사이에 공기가 새어들어 가는 `숨구멍`이 있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옷은 옷이 숨쉬기도, 살이 숨쉬기도 어렵게 철통같이 완강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약간의 살이 대기에 노출되는 것도 차단하는 이런 옷은 이물감이 너무 심해서, 그 옷과 옷을 입은 사람이 통째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낯선 별에서 온 `외계 사물`처럼 느껴진다.
`방제복`이라는 옷은 너무 낯설어서 지구상의 옷 같지 않다. SF영화에 자주 나오는 우주복과 이 사물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외관으로 보기에 이 사물 안에 사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투명 유리를 통해 드러나는 얼굴 부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이 보이는 우주복의 투명 유리 머리 부분보다 `방제복`은 더 낯설다.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는 재난영화에서, 방제복의 얼굴 부분은 대체로 투명하지 않고 어두운 색깔 유리로 되어 있다. 그들의 얼굴, 그들의 시선은 가려져 있다.
아폴로호를 타고 달에 발을 딛던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은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데 비해 전염병이라는 지구의 위험 상황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그들은 지구인이 아니라 지구인을 `잡으러` 온 다른 혹성의 외계인처럼 섬뜩하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으로 페쇄되고 게토화된 오랑시에서 필사적으로 시민을 구출하는 의사 류와 신문기자 랑베르가 맨몸이었던 것과는 달리 영화 `감기`에서 분당에 투입된 `방역군`은 우주선 같은 방제복을 입고 있다. 영화에서 방제복의 군인들은 시민을 구출하는 게 아니라 `진압`하고 격리하고 `죽인다`. 맨살로 오염된 대기에 노출된 시민들과는 다른 `안전한 옷`을 입고서(입었으므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외계의 낯선 존재처럼, 살아 있지 않은 기계처럼 사물화되어 움직인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6월 5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54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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