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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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1-27 15:43 조회32,3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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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 의해 만들어질 국정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들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본연의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와야 한다.
“대한민국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바로잡겠습니다.” 새누리당 당원협의회 이름으로 된 이런 플래카드가 가로수에 묶여 펄럭이고 있다. 그런 역사교과서가 정말로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태평한 얼굴로 그 밑을 지나다니고 있다. 상식에 어긋나는 교과서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심사를 맡았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도 현행 역사교과서에는 좌편향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치권의 허위선전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터무니없는 허위를 실재하는 사실인 것처럼 날조하는 기만적 강변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밀어붙이는 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거듭 손상을 입어왔지만, 작금년에는 단순히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갖가지 언어도단의 중심에는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도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나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술적 결론을 내려, 많은 사람들 입길에 올랐다. 이 말이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나왔다면 웃어넘겨 그만이었을 터이고, 역사학자의 주장으로 제기되었다면 논쟁의 과정을 통해 그 주장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드러냄으로써 그 나름 국민계몽적 효과조차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미명 아래 강행되는 사태 안에는 내가 보기에 몇 개의 밀접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안건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사회적 다원성을 해체하려는 파시즘적 발상이 준동한다는 점이다. 보수언론도 국정화를 비판한 데서 드러나듯이,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단일 교과서의 국가적 강제는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진적 제도일뿐더러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방식이다. 그나마 1974년 유신시대의 국정 국사교과서는 그런대로 정평 있는 학자들이 이름을 걸고 집필했고 전문가들의 공개적인 논평을 받기도 했다. <창작과비평>그해 여름호는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마련하여 ‘사관(史觀)과 서술체재’, ‘상고사’, ‘고려시대’, ‘조선 전기’, ‘조선 후기’ 등 분야별로 상당히 심층적인 검토를 한 바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필자들 중 한 명이 현재 국정화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씨라는 점으로, 나는 원고 받으러 찾아갔던 당시 고려대 그의 연구실 풍경을 지금도 기억한다. 어쩌면 김씨는 자신이 그 특집의 필자였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 국정화는, 무슨 낯 뜨거운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닐 텐데, 이름을 감춘 필자들이 짧은 시일 안에 집필을 끝낸다고 한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말이나 말았으면 덜 부끄럽겠다.
다른 한편,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특정인의 편견을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동원해 온 국민에게 주입시키려는 시도라는 데도 문제가 있다. 신정(神政)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시대착오로서, 북한의 유일수령체제나 삼대세습에 버금가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일 것이다. 게다가 역사를 보는 눈 자체가 독창이 아니라 딴 데서 풍월로 배워온 것이다. “일본의 전후 역사교육은 일본인이 계승해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잊고 일본인의 긍지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일본인은 대대손손 사죄하도록 운명지어진 죄인처럼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냉전 종결 후에는 이 자학적 경향이 더욱 강해져 현행 역사교과서는 과거 적국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사실인 양 기술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후소사 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이다.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발언은 일본 우익의 자학사관을 그대로 빼온 것임이 한눈에 명백하다. 일본 도쿄대학의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역사/수정주의>(김성혜 옮김·2015)에서 후소사 교과서의 지적 배경인 역사수정주의가 전쟁과 식민지배 같은 과거의 범죄에 대한 일본의 ‘망각의 정치’에 관계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박근혜의 역사수정주의는 1970년대 유신독재의 기억을 현실 속에서 재생시키려는 정치적 저의의 작동이라는 점이 대조적이다.
(후략)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15년 11월 27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9221.html
갖가지 언어도단의 중심에는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도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나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술적 결론을 내려, 많은 사람들 입길에 올랐다. 이 말이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나왔다면 웃어넘겨 그만이었을 터이고, 역사학자의 주장으로 제기되었다면 논쟁의 과정을 통해 그 주장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드러냄으로써 그 나름 국민계몽적 효과조차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미명 아래 강행되는 사태 안에는 내가 보기에 몇 개의 밀접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안건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사회적 다원성을 해체하려는 파시즘적 발상이 준동한다는 점이다. 보수언론도 국정화를 비판한 데서 드러나듯이,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단일 교과서의 국가적 강제는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진적 제도일뿐더러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방식이다. 그나마 1974년 유신시대의 국정 국사교과서는 그런대로 정평 있는 학자들이 이름을 걸고 집필했고 전문가들의 공개적인 논평을 받기도 했다. <창작과비평>그해 여름호는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마련하여 ‘사관(史觀)과 서술체재’, ‘상고사’, ‘고려시대’, ‘조선 전기’, ‘조선 후기’ 등 분야별로 상당히 심층적인 검토를 한 바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필자들 중 한 명이 현재 국정화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씨라는 점으로, 나는 원고 받으러 찾아갔던 당시 고려대 그의 연구실 풍경을 지금도 기억한다. 어쩌면 김씨는 자신이 그 특집의 필자였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 국정화는, 무슨 낯 뜨거운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닐 텐데, 이름을 감춘 필자들이 짧은 시일 안에 집필을 끝낸다고 한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말이나 말았으면 덜 부끄럽겠다.
다른 한편,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특정인의 편견을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동원해 온 국민에게 주입시키려는 시도라는 데도 문제가 있다. 신정(神政)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시대착오로서, 북한의 유일수령체제나 삼대세습에 버금가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일 것이다. 게다가 역사를 보는 눈 자체가 독창이 아니라 딴 데서 풍월로 배워온 것이다. “일본의 전후 역사교육은 일본인이 계승해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잊고 일본인의 긍지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일본인은 대대손손 사죄하도록 운명지어진 죄인처럼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냉전 종결 후에는 이 자학적 경향이 더욱 강해져 현행 역사교과서는 과거 적국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사실인 양 기술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후소사 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이다.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발언은 일본 우익의 자학사관을 그대로 빼온 것임이 한눈에 명백하다. 일본 도쿄대학의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역사/수정주의>(김성혜 옮김·2015)에서 후소사 교과서의 지적 배경인 역사수정주의가 전쟁과 식민지배 같은 과거의 범죄에 대한 일본의 ‘망각의 정치’에 관계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박근혜의 역사수정주의는 1970년대 유신독재의 기억을 현실 속에서 재생시키려는 정치적 저의의 작동이라는 점이 대조적이다.
(후략)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15년 11월 27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92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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