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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독일 사회의 인권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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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7-06 15:59 조회32,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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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인권보호 측면에서 독일이 모범적인 나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난민과 망명신청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찰과 법집행 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권이 진보의제임은 분명하지만 존재론적 출발점은 특정 이념이 아닌 ‘보편적’ 인간 존중 사상이다. 독일의 인권운동은 진보-보수를 가로지르는 인권의 합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긴장은 인권운동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한국에서 독일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많은 사람이 독일의 통일 경험, 정치적 안정과 타협문화, 사회적 시장경제, 노사 공동결정 제도 등 이른바 ‘독일 모델’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지 궁금해한다. 노동계, 정치인, 정책전문가, 지식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찰의 결과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독일 인권에 관한 견문 기록은 거의 없다. 한국 법체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유럽 지역 인권 제도에서 핵심 역할을 하며, 올해부터 유엔인권이사회의 의장국을 맡을 정도의 나라이니 인권에 관해서도 참고할 만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인권 현황, 특히 인권을 둘러싼 담론의 특징을 조사할 방법을 찾았는데 고맙게도 독일의 한 재단이 현지를 몇달 방문하여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해 주었다. 주한 독일대사관에 인터뷰 관련한 도움을 청했더니 필요한 사람들을 신속하게 연결해주었다. 방대한 관료조직을 보유한 나라의 효율적인 행정이 인상적이었다. 출국 전 재단의 한국 사무소 소장을 만났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한국에서 독일 배우기가 유행처럼 되어 있는데 제발 독일 사회를 과도하게 이상화하여 소개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피상적이고,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묘사는 서로 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소개된 정책은 한국에 거의 소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은연중 독일을 칭찬할 준비가 되어 있던(!) 필자로선 뜨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백번 맞는 말이다. 공정한 관찰과 건설적인 비판이 가장 우호적인 평가이지 않겠는가. 아래 내용은 이런 점을 고려한 소략한 방문기이다.


우선 제도와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독일이 모범적인 나라임은 분명하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성이 불가침이며, 훼손할 수도 양도할 수도 없는 인권이 모든 공동체의 기초라고 규정한다. 이런 원칙은 영구불변이고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이른바 ‘영구조항’까지 마련해 놓았다.


연방헌법재판소가 기본법의 수호자로 신뢰를 받고, 주와 연방 차원의 모든 법규가 기본법의 정신과 조응하게끔 기대된다.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국민 누구나 자기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대다수 법조인은 국내법만이 아니라 유럽인권법에도 훤하다. 유엔의 인권레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주요 국제인권조약에 거의 모두 가입·비준하였고 (이주노동자협약 제외), 국내법체계가 국제법체계와 ‘우호적 관계’를 이뤄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와 있다.


입법부도 인권에 열성이다. 연방의회에 인권 및 인도적 지원 상임위원회가 있고, 의회 소속 군무담당관이 군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인권이 지켜지고 ‘제복 입은 시민들’의 진정권이 보장되도록 감시한다. 행정부도 인권 활동에 적극적이다. 외무부의 인권 및 인도적 지원실에서 인권외교 정책을 총괄하며, 개도국 지원을 포함한 모든 대외활동에서 인권이 반영되도록 모니터한다. 경제발전노동부는 노동권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적극 추진한다. 연방 차원의 반차별기구, 그리고 다민족·다문화 상황에 대응해 만들어진 ‘통합을 위한 국가계획’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본에 있는 연방정치교육원에서는 ‘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에서 인권을 핵심 가치로 강조한다. 시민사회에서 교회와 노동조합의 인권 활동이 두드러져 보였다. 50여개 이상 되는 인권단체들 사이에 정보를 교류하고 연대활동을 조율하는 ‘인권 포럼’이 인권운동의 허브 구실을 한다.


하지만 독일에 인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난민과 망명신청자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의 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을 작년 한해에만 20만명 이상 받았고 현재 40만명이 대기 중이다. 유럽 최대 규모이다. 망명 인정 규모, 국내 지역별 배정, 고용과 국내이동과 사회보장 관련한 대우 수준, 본국으로의 송환에 따른 박해 가능성 등의 문제가 난제로 대두되어 있다. 그런데 난민과 망명신청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난민보호소나 망명자 수용소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것은 보통이고 욕설, 희롱, 폭력, 투척을 저지른다. 이런 분위기에 위축된 난민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14년에만 전국적으로 이런 사건이 150여건이나 발생했다. 최근에는 방화사건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짓을 극우파들이 주동하는데 이것을 정치적 성격의 사건으로 보고 그에 맞춰 법집행 및 사법조치를 해야 할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 되어 있다. 극우파와 정보기관의 뒷거래를 시사하는 사례도 있다.


법의 지배와 인권 원칙이 확립되었다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경찰과 법집행 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금자와 망명신청자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가 큰 사회문제로 비화하여 국가 차원의 고문방지 기구가 만들어졌지만 구체적인 행정지원의 미비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 사설보안업체에 의한 구금자 가혹행위, 대규모 무차별 도·감청, 인권침해 국가에 대한 감시장비 수출, 트랜스젠더 시민의 프라이버시 등도 인권 현안으로 제기되어 있다. 미국이 주도했던 대테러 전쟁 와중에서 테러 용의자를 해외에서 불법구금, 심문했던 것에 독일 정보기관이 공조했다는 혐의도 실체가 있어 보였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15년 6월 23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971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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