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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희망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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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7-06 16:01 조회32,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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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 작가가 일깨워준 대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희망 없음을 이야기하기가 쉬워진 세상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메르스를 가래로도 막지 못한 정부나 의료기관을 보든, 세월호 사건을 겪고도 크게 변하지 않은 한국사회를 보든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사회의 질서 속에 내 자리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내게 국가가 있는지 의문을 품어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가도 공동체도 더 이상 의미 없다, 세상은 이미 망했거나 곧 망할 것이다 라는 말을 던지는 사람들 다수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자격을 의심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특히 지식인들 가운데는 대안적 상상을 특출한 사람의 머리에서나 나올 수 있는 남다르고 기발한 생각에서 찾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이렇게 사변적인 대안에 만족하거나 절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가진 특권적 지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국가의 보호 바깥에 놓인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공공성을 담보하는 국가나 나의 존재를 포함하는 사회가 절실하기에 공동체에 대한 믿음 역시 쉽게 포기하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국가의 보호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애초부터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병원 직원인 건 분명하지만 정규직이 아니니 직원 대상 메르스 감염 추적 관리 때도 안중에서 벗어났던 것일 테고,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집을 떠나 사는 많은 청소년들 역시 존재하지만 파악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존재감이 없어 사회의 관심이 되지 못하면 통계가 없고, 통계가 없으니 정책의 근거가 없어지는데, 딱히 지원도 없으니 존재를 입증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이 악순환은 한국 사회에 이미 자리 잡고 살아가는 어떤 이들의 존재를 지우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미국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미국 전역에서 인정한다고 판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 판결이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면서 국가가 보호할 대상에 그들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결혼제도에 기반을 둔 가족이 절대적인 단위가 되는 세계에서 배우자로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은, 재산을 증여ㆍ상속할 때, 세금공제나 동반이주를 할 때, 그리고 의료적 처치에 필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이미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을 법적 보호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법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법이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현실을 법에 반영하도록 노력한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문화인류학
(한국일보, 2015년 6월 28일)

기사 전문
http://www.hankookilbo.com/v/83f261e3c4c84cf78653da629130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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